박현정의TV속으로
우리 드라마가 살 길은 결국 장르의 분화뿐이다. 최근 들어 평균 시청률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는 것은, 인터넷 등을 통한 시청층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드라마 자체에 식상해 하는 징후의 하나로 봐야 옳다. 이제, 뭘 더 새로운 것을 하겠는가. 누구의 멜로물이 어떻게 흘러가고 그 와중에 끼워 넣은 성공스토리는 또 어떻게 흘러갈지, 지나가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보아도 예상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성공 원인이다. 딴 게 아니다. 이 드라마는 그런 한국 멜로 드라마의 식상함과 진부함에 대한 불만이 궁극에 달한 시청자들로부터 터져 나온 일종의 시위다. 우리 드라마 판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로맨틱 멜로의 관습을 그야말로 하나씩 하나씩 깨부수어버린 것 말이다. 연적과의 담판에서 울면서 짐 싸는 여자가 아니라 오히려 연적을 언변으로 압도해 버리는 여자. 남자의 잘나신 부모와의 만남에서 유머를 섞어 잽을 날릴 수 있는 여자. <삼순이>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 멜로의 진행과 관습에 식상해 하고 있었는지를 읽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한데 욕 잘하고 성깔 있고 등등 캐릭터의 표면적인 것만 긁어 모아서는, 그 캐릭터를 또다시 기존의 식상한 멜로물 관습 안에다 가둔다. 이런 모순이 있을까? 이제는 드라마들이 황금알을 꺼내기 위해서 거위의 배를 가르기 시작한 시점이 온 모양이다. 물론 어떤 장르에나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있고, 우리 드라마판에도 작가주의 작가나 피디들이 있다. 하지만 작가주의가 다가 아니다. 문제는 상업 드라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제 ‘아시아 최강’이라는 말까지 듣는 우리나라의 상업 드라마는 어디로 갈 것인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장르의 분화. 멜로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멜로 안에서의 장르가 더욱 나뉘어져 발전해야 한다. 또한 비록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지는 모르지만우리 드라마도 매일 거위만 들여다보고 있을 게 아니라, 이제 다른 거위를 찾아서 길을 떠나야 할 것 아닌가. <귀엽거나 미치거나>도 그렇고, 뭔가 조금씩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마다 싹이 잘리는 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미래를 보아주기 바란다. 박현정/드라마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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