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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3 21:51 수정 : 2006.05.03 21:51

탈북자의 사랑이야기 넘어
‘공동체’ 문제로 분단 다뤄
안판석 피디 영화 데뷔작

망명자. 사람들은 그에게 중립적으로 말할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모국의 적대국으로 망명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망명 동기가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그는 친지 동료들을 모국에, 박해와 가난이 있는 그곳에 두고 온 이다. 그의 망명을 받아준 나라의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마음 속에서까지 그의 원죄를 용서해주지는 않는다. 그가 망명을 받아준 나라를 비판한다면 사람들은 곧바로 그에게 ‘기회주의자’란 낙인을 찍을 것이다.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를 한번 등진 이를 끝없이 의심한다. 속이 좁은 건 공동체의 속성이다. 그건 조폭 공동체보다 국가 공동체가 더 심하다. 국가 공동체는 그 속성을 구성원 개개인의 마음에 내면화시키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사랑이야기를 멜로드라마 톤으로 그려가는 〈국경의 남쪽〉(4일 개봉)이 전하는 건 뜻밖에도 이런 공동체의 무서움, 한번 공동체를 등진 행위가 초래한 결과의 참혹함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한 사회에 소박한 시민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다. 국가 기관이 그를 괴롭히는 일도, 체제가 그의 삶에 개입하는 일도 없다. 여느 남한 사람과 다름 없는 일상을 꾸려가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몸만 자유로워졌을 뿐, 다른 남쪽 사람들과 달리 정신과 마음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걸 깨닫게 해준 순간은, 슬프게도 사랑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선호(차승원)는 북한 만수예술단의 호른 연주자다. 평양시민으로 태어난 그곳의 중상층이다. 박물관 안내원인 연화(조이진)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때, 남한에 있는 할아버지가 보낸 비밀 편지가 발각돼 가족과 함께 탈북해 남한으로 온다. 연화에게, 먼저 남한에 가서 사람을 보낼 테니 뒤따라 오라는 약속을 남겨 놓았다. 남한에 온 선호는 연화를 데려올 사람을 찾다가 사기를 당해 돈만 떼인다. 다시 돈을 모으려고 악착같이 일하던 중에 연화가 시집갔다는 말을 전해듣는다. 결국 포기하고 남한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한다. 시간이 지나 연화가 탈북해 남한에 온다. 연화는 미혼이었다.

사랑이야기로만 보자면 〈국경의 남쪽〉은 특별할 게 없다. 외적인 여건 때문에 강제로 헤어지고 잘못된 정보와 오해가 쌓여 둘의 진실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장벽이 생겨버린, 많이 보아온 구성이다. 선호와 연화가 북한에서 연애를 시작해 결혼을 약속하는 과정의 묘사는, 잘 된 연출과 상투적인 연출이 절반쯤의 비율로 뒤섞인다. 완성도 면에서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자아내는 전반부를 통해, 영화는 선호라는 순박한 캐릭터 하나를 구축한다.

물론 이 캐릭터는 이념형이다. 우리가 북한 사람을 두고 선의와 이해심을 동원해 설정할 수 있는 순박한 인간형. 그러나 이런 인간형은 낯선 체제, 그것도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체제 앞에 주눅이 들어버린 망명자 일반의 모습과 부합하기도 한다. 또 북한 사람 캐릭터를 더 세심하게 다가가 그려내기도 여간 쉽지 않을 터. 이 영화는 선호의 캐릭터에 이런저런 인위적인 덧댐을 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선호의 사랑 이야기에 구체성을 보탠다. 이미 결혼해버린 처지에 연화를 만나, 선호는 아무런 능동적 행동도 하지 못한다. 낯선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과 결혼하는 것만큼 확실한 충성 서약도 없다. 이미 한번 공동체를 등진 선호가 새로 만난 공동체에 바친 그 서약을 깨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일본이든, 홍콩이든 한국 아닌 다른 곳으로 가자고 외치는 선호의 목소리가, 마치 황무지에서 구원을 바라는 외침처럼 들리는 순간 이 영화는 외연을 넓힌다. 속 좁은 공동체, 특히 다른 공동체와 적대하는 공동체는 망명자뿐 아니라 그 안에서 죽 살아온 이들에게도 어느 순간 황무지로 돌변할 수 있다. 분단 문제를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국경의 남쪽〉은 낡은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한발 앞서간 휴머니티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 〈현정아 사랑해〉 등을 연출한 안판석 피디의 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싸이더스FN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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