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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판서 다져진 연기력이 ‘밑천’
극단 ‘차이무’서 여균동 감독 만나
“저예산 탓 삼겹살 한번 못 먹어”
‘비단구두’로 첫 주연 이성민
22일 개봉하는 여균동 감독의 〈비단구두〉에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 만큼 자연스럽고 유머 있는 조폭(조직폭력배)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한다. 단순하고 성질이 불같으면서도 자신이 조폭임을 십분 알고 있는 이 인물 ‘성철’은 영악하기도 하다. 단순 명쾌한 탓에 어떨 때는 사리 분별이 누구보다 명확하고, 성인의 격언 같은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다른 조폭 영화처럼 말과 행동의 ‘오버’에서 유머를 의도하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의 자연스러움이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우디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두목의 애인 여배우를 호위하고 다니면서 연극 연출 코치를 기막히게 하는 조폭 채즈 팔민테리를 연상케 한다.
이런 식이다. ‘가짜 북한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잇따라 터진다. 이 여행의 연출을 책임지는 영화감독 만수가 성철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한다. “이번 여행 잘못되면 그 책임 전부 제가 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니가 대장이라고?” “그 말이 아니라….” “그럼 대장 아니라고?” “아니, 세상에 어떻게 대장과 졸병만 있습니까?” “그럼 대장이냐? 아니야?” “아, 답답해. 이번 연출에 제 목숨이 걸려있다고요.” “목숨을 걸었다고?(잠깐 침묵) 좋았어. 대장!”
연기가 좋지 못하면 캐릭터가 살아날 수 없는 법. “영화는 〈비단구두〉가 처음이죠. 여균동 감독이 극단 ‘차이무’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고. 그런 등등의 인연으로 만났고, 촬영 전에 오디션 보고 맡게 됐죠.”
성철 역의 이성민(38)은 차이무에서 활동하는 연극배우이다. 〈비언소〉 〈돼지 사냥〉 〈거기〉 등에 출연했다. 실제 인상은 부드럽고 조폭 같지 않았다. 그러나 심드렁해 보이지만 눈매가 살아있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로 짧게 끊어 말하는 영화 속의 그는 충분히 조폭스러웠다. 영화에서 성질을 터뜨릴 때가 잦지 않은데, 터뜨릴 듯하다가 참을 때 정말 조폭 같아 보이는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좀더 코믹하게 해볼까 했는데, 감독님이 그러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자연스러울 것 같아 고향 사투리를 썼고. 그밖에 준비한 건… 아, 조폭이 된 고향 친구를 한번 만났죠. 돈 없어 문신을 못하고 있다고 하고, 밤길 혼자 다닐 때 제일 무섭다고 하고. 인상은 정말 조폭 같은데. 둘이 한참 웃었죠.”
처음 출연한 〈비단구두〉에서 그는 주연이었지만, 개봉이 밀려 영화 관객에게 먼저 선보인 건 〈맹부삼천지교〉의 사채업자, 〈발레교습소〉의 공무원 등 아주 짧게 나오는 단역이다. 〈말아톤〉 〈소년, 천국에 가다〉에도 출연했는데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갔다.
“〈말아톤〉은 2회 촬영하기로 했는데, 1회만 찍고는 안 부르더라고요. 장소 섭외가 안 돼 제가 나와야 할 설정 자체를 덜어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찍고 있는 〈미스터 로빈 꼬시기〉에서 그는, 대니얼 헤니가 사장으로 있는 외국계 인수합병 회사의 상무로 자주 출연한다고. 저예산 영화 〈비단구두〉는 워낙 힘들게 찍어서 돌이키면 고생한 기억이 앞선다고 말했다. “삼겹살 한번 못 먹었죠. 눈밭에서 햄버거와 콜라 먹는 게 참…. 일정이 빠듯하니까 쉬고 가자고 할 수도 없고. 경찰과 싸우는 장면에선 쉴 틈 없이 몇번을 다시 찍었는지 몰라요. 숨이 차서 경찰 역의 박노식이 먼저 토하고, 저도 토했죠.” 그는 “관객 없이”, 또 “상대 배우와 충분한 연습기간 없이” 찍는 영화의 연기가 연극과는 달라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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