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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카리스마 폭발 영화 <피와 뼈>의 주인공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을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 건 불편할 뿐더러 꽤나 당혹스럽다. 1923년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와 오사카에 내린 재일한국인 김준평에게는 피해자 또는 희생자의 이미지가 없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그는 가해자이고 천하의 악질 폭군이다. 그는 아이들이 보건 말건 아내를 강간하고, 가혹한 노동착취에 항의하는 공장 직원의 얼굴에 이글이글 타는 숯덩이를 내던지고, 그의 빚독촉에 허덕이다 자살한 동네 사람을 향해 “죽어도 내 돈은 갚아야 한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고 영화는 김준평을 ‘괴물’로 만든 건 시대탓이라고 부연하지도 않는다. 2차대전 막바지에 가족 가운데 한명이 징병에 나가거나 종전 뒤 친일 시비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재일동포 사회의 풍경이 영화 앞부분에 삽입되기는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그의 성격과 구체적인 연관을 맺는 건 아니다. 도리어 그는 주변 상황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의 욕망, 현금과 섹스에만 몰두한다. <피와 뼈>에는 김준평의 세 아들이 등장한다. 큰 아들 다케시는 어느 날 갑자기 사생아임을 자처하고 김준평의 집으로 쳐들어 온다. 야쿠자 떨거지같은 인상의 다케시는 아버지에게 대항한다. 명색이 부자관계인 둘은 비 오는 골목길에서 그야말로 ‘개싸움’을 벌인다. 오로지 살기(殺氣)만이 꿈틀거리는 이 싸움을 카메라는 무섭도록 냉정하게 중계한다. 참혹한 싸움의 추악한 승자는 김준평이다. 김영희에게서 낳은 아들 마사오는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김준평의 주먹에 눌려 고작 김준평이 애인과 사는 집에 가서 부수고 도망치는 소극적인 저항을 한다. 그러나 그가 물려받은 “나쁜 피”는 그를 작은 김준평으로 만들어 나간다. 셋째 아들은 늙은 김준평이 일본인 여성에게서 낳은 아들로 그는 영화의 말미에서 이 꼬마를 엄마 몰래 납치해 전재산을 들고 북한으로 간다. 그리고는 지독하게 스산한 죽음을 맞는다. 김준평이 그렇게도 집착했던 핏줄은 모두 그가 악착같이 모은 돈처럼 불행하고 허망한 나락으로 빠진다. <피와 뼈>는 142분의 상영시간을 견디기 힘든 영화다. 지루하다는 말이 아니다. 폭력 장면이 거칠거나 섹스 장면이 노골적이라는 이유도 아니다. 최양일 감독은 인격을 구성하는 어떤 제도나 관습, 이념, 상식 따위를 완전히 벗겨낸 채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린다. 모든 사회적 치장이 벗겨진 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건 수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그를 설명할 수 있는 고리를 찾을 수 없는 데다가 혐오감이나 연민같은 감정을 쉽게 투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피와 뼈>는 시종 건조한 시선으로 김준평을 응시하면서도 그를 통해 관객의 감정적 혼란이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독하게 밀어붙인다. 김준평을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의 호연을 짚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건 일종의 무례함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감독작들에서 비극성과 희극성이 뒤섞인 이상한 에너지를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인물로 주로 등장했던 그는 <피와 뼈>에서 폭발한다. 그 폭발력의 카리스마는 때로 눈을 질끈 감을 정도로 거대하고 보는 이에게 버겁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25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프리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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