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0 20:53
수정 : 2006.07.10 20:56
비정규직·여성·불륜 등 갑갑한 세 젊음 3색 에피소드
김영남 감독 장편 데뷔작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초청돼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의 영화 한편이 13일 개봉한다. 김영남(34)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 만든 단편들이 각종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이후 만든 단편 〈뜨거운 차 한잔〉은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단편상인 선재상을 받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그의 장편 데뷔작 〈내 청춘에게 고함〉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데 이어 8월2일부터 열리는 제59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스물한살 정희(김혜나), 스물여섯살 근우(이상우), 서른살 인호(김태우) 셋을 각각의 주인공으로 한 독립된 에피소드 세 편을 나이 순서대로 펼쳐 보인다. 정희는 인생이 자꾸 꼬인다. 섹스만 중시하는 듯한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깨지고, 언니와 함께 마련한 새집도 사기 당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희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면서, 주변인들에 대한 정희의 단상을 쌓아가는 이 에피소드는 ‘청춘’을 이야기하기 위한 프롤로그 같다.
근우의 에피소드에서부터는 근우 이외의 인물에게도 시선을 조금씩 준다. 통신 회사 비정규직인 근우는 노사 다툼의 와중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 그러나 노사 어느 편도 들지 못한 채 숨어들 듯, 유부남과 연애하는 한 여자의 사연을 전화도청을 통해 알게 된 것을 계기로 그 여자에게 몰두한다. 여자에게 고백도 하고, 상대방 유부남을 폭행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여자가 자기 욕망의 정당한 타깃이 아님을 확인하는 일뿐이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 보이는 그를, 욕망이 구제할 수 있을까.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인호는 그 답이 돼야 할 텐데, 인호는 캐릭터가 많이 다르다. 공부하다가 늦게 군에 가 서른살에 제대 말년을 맞았다. 결혼도 했다. 부인을 놀래려고 연락 없이 말년 휴가를 나왔더니, 부인 없는 집에선 불륜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집안살림에 보태는 게 없는 인호는 그걸 문제삼을 처지가 아니다. 정희나 근우와 달리, 부모나 처가가 잘사는 듯한 인호는 집과 부인을 일찍 얻어놓고 이걸 방어하기 바쁘다.
영화의 세 에피소드에서 ‘청춘’에 대한 일반론을 끄집어낼 수도 있다. 주인공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타인의 시점이 늘어나는 동시에 주인공은 세상과 타인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이런 일반화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캐릭터 사이의 연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근우가 단순해 보이면서도 노회한 캐릭터라면, 인호는 노회해 보이면서 단순한 캐릭터다. 근우가 인호처럼 될까. 아니, 그 이전에 이 세 캐릭터가 변하기는 할까. 이 영화는 청춘에 관한 영화이기보다, 각기 다른 성과 계급, 성격의 세 젊은이를 모델 삼아 그려낸 동시대의 소묘처럼 보인다. 한명 한명의 사연들이 갑갑하기도 하지만, 영화에 스산한 느낌을 부여하는 건 세 에피소드 사이의 단절이다. 영화는 같은 노래를 통해, 혹은 한 에피소드가 사건화돼 다른 에피소드에서 라디오 뉴스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해 에피소드 사이에 가느다란 다리를 놓으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이어질 듯 말 듯 섬세하게 떨린다. 그게 세상사의 불안한 단절과 연속의 되풀이를 떠올리게 하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영을 남긴다. 그건 각 에피소드가 정직하고 겸손하게 디테일들을 쌓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이 신인 감독에 대한 기대치에 그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화답한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이모션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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