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 봉준호 감독 대담
대담자=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
27일 개봉을 앞둔 <괴물>은 지금까지 대규모 예산으로 만들어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 본격적인 괴수 장르 영화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영화를 품평하기 위해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가 봉준호 감독을 지난 7일 삼청동에서 만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선후배 사이기도 한 두 사람은 <괴물>이 지난 정치적 함의와, 엇박자 유머, 한국에서 괴물영화 만들기의 지난함에 대해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김소영=영화의 첫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특히 한강의 심연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강이 폭포처럼 올라온다든가 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건가
봉준호=괴물 장면 말고는 사실상 컴퓨터그래픽이 거의 없었다. 맨 마지막, 한강에 눈이 오는 장면과 프롤로그에서 투신하는 남자와 그 뒤로 63빌딩이 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 하늘이 맑아서 찍고 난 다음에 컴퓨터그래픽으로 회색 구름을 깐 정도를 제외하고는.
김=기대가 매우 커서 처음 한강 다리 나오는데 가슴이 두근 대더라.
봉=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걱정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는 수모, 편견, 멸시, 구박, 우려가 장난 아니었다. 괴물 영화 만든다니까 영화인에서 친구들까지 너 미쳤냐, 영화 한편 잘 되더니 정신 못차리고 자만에 빠졌다, 이무기 영화 만든다며? 잘 해봐라 등등 냉소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머리 깎으라고 하면 빡빡미는 애들의 오기 같은 심정으로 제목도 <괴물>이라고 붙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설마 진짜 괴물은 안나오죠? 송강호의 인격이 괴물이라면서요 이렇게 반응하더라(웃음).
|
김=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제작비가 독립영화 수준이지만 어쨋든 한국에서는 100억원 정도 제작비 규모면 블록버스터다. (투자·제작사와) 조정과정이 흥미로울 것 같다. 요즘 제작 투자 받는 과정에서 엔딩이나 스펙터클 포함해 요구가 많지 않나.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엔딩이어야 한다거나. 그런데 이 영화는 해피앤딩과 거리가 멀다. 봉=정말 전과정을 통틀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하도 말들을 안 해서 오히려 내가 붙잡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결말만 보자면 디즈니풍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다, 아니다는 반응이 절반정도 됐던 것같다. 김=<살인의 추억> 이후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호감도 100%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같다. 어떻게 보면 한국영화 산업의 특수한 상황인 것도 같고. 봉=대신 그 상황에서 잘 해야 겠다. 14개월 촬영하고 이렇게 되버리면 안되니까, 나나 프로듀서나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하려고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너 미쳤냐” “잘해봐라” 찍기전 냉소 김=<고질라>나 <대괴수 용가리>처럼 괴수영화를를 정치적으로 읽는 독해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자. <고질라>는 피폭에 대한 영화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탄생했다. <용가리>는 삼팔선 디엠지에서 남대문 쪽으로 온다는 점에서 한미관계가 이야기 아래 깔린다. 괴물도 고질라나 용가리처럼, 미국이 개입한 전쟁과 연관돼 있다.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은 비극적인 장면, 정치적인 비관과 블랙 코미디가 서로 약간씩 부정합, 엇박자를 만들면서 간다는 점이다. 그렇게 봤을 때,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으로 흘러나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기지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연상케 하고, 영화는 이런 식으로 미국이 한국 주권을 담보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렇게 정치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한강이 넓으니까 넓은 마음 가져라”식의 대사가 튀지 않도록 완급 조정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봉=칸 영화제에서도 코미디나 정치적 비극이 잘 뒤섞여서 굴러간다, 어떻게 배합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러 요소를 별도로 놓고 배합한 건 아니다. 나한테는 하나의 단일한 상황으로 인식됐고 그걸 직관적으로 풀어나갔다. 기존 장르 카테고리에 맞춰서 보려고 하니까 여기서는 코미디네, 정치풍자네, 서스펜스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풀어간 것이다. 길을 걸을 때 좌측 발이 나가니까 오른 손이 나가야지 하고 걷지 않듯, 그냥 걷는 리듬으로 시나리오 쓰고 찍고, 편집했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도 그런 엇박자의 유머가 있었다. <괴물>의 엇박자도 유형적으로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확인할 수 있는 공포다. 이걸 자기 리듬으로 갖고 있다는 건 재능인 것 같다. 봉=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여러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김=“한강 넓으니까 맘 넓게 가져라”라는 식의 엇박자 유머가 어색하지 않게 들리다가 강두 아버지가 강두 어린 시절 이야기 하는 가운데 유기농 운운하며 유머를 섞을 때는 불편하더라. 웃는 게 무감각하게 느껴지고. 소녀가 납치된 이후에도 나오는 웃음도 그랬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웃을 구석 찾고 있다는 게 불편했다. 2000년 미군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을 보고
내영화를 위한 사건이구나 아전인수 생각
내 작품 세평중 재미에 가장 집착한 영화 봉=<살인의 추억>도 엄청 무서운 연쇄살인인데 포복절도할 웃음이 나왔는데 왜 그렇게 될까 생각해봤다. 내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의 구조나 설정을 짤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같다. 일단 못난 인물이 나온다. <플란더스의 개>의 이성재, 배두나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의 한심스러운 형사들도 그렇다. <괴물>도 평범 수준을 밑도는 가족이 나와서 자신들이 감당 안 되는 상황이나 사건에 노출된다. 연쇄살인이라는 현대 범죄에 적응 안 된 형사들처럼, <괴물>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히어로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웃음이 유발될 가능성이 떨어지는데 그들이니까 가능해진다. 상황은 심각한데 스크린 밖에서 볼 때는 웃긴 상황이 되는 것이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는 지하실의 보일러 김씨가 등장하고 <살인의 추억>에는 수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괴물>도 마찬가지고 습지, 물기, 수로, 지하실 등 봉 감독의 영화에는 이런 공간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흔히 젖줄이라는 표현으로 여성화되는 한강이 영화에서 미군의 포르말린으로 더럽혀지고 그 어머니가 낳은 아이가 괴물이 된다. 근데 괴물에 성별이 있나. 봉=괴물 크리에이터인 장희철씨와 추측을 많이 했다. 여잘까 남잘까. 장씨는 자웅동체가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렸을 땐 여성스런 느낌도 있고, 밖에 나왔을 땐 남근처럼 보이긴 하고. 한강도 여성적인 상징, 한각의 기적 처럼 국가적, 역사적 상징을 배제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백두산 천지의 반댓말이라고 해야 할까? 백두산 천지는 일상과 동떨어진 신비롭고 안개 잔뜩 낀 공간이지 않나. 영화에서 한강은 그런 것의 반대다. 유람선, 자전거, 인라인 타는 곳에서 괴물이 나온다, 이런 충돌을 통해서 낯선 공간이 된다. 괴물도 보통의 괴물 영화에서는 조금씩 보여주면서 괴물의 미스터리, 괴물을 어떻게 죽일까에 집착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괴물이 초반이 나오고 거기서 이야기를 바이러스설, 가족 납치극 등으로 확장시켰다. 오히려 괴물은 생물체로서 그 자체로만 남는 거고, 상징이 집약되기보다는 거기서 파생된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다.
|
시각효과 짐 무거워 잘아는 배우 캐스팅
현서만 ‘뉴페이스’…송강호한테 기안죽어 봉=시각효과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10톤짜리 트럭 1천대를 이빨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웃음). 배우마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면 거의 자살하지 않을까 싶어 잘 아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현서는 너무 중요한 역할이라 뉴페이스가 필요했다. 오디션을 많이 했다. 오디션 할 때보다 촬영 때 많이 자라서 당황하긴 했는데 기가 세서 변희봉, 송강호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는 게 없더라. 이 친구가 촬영할 때 중1이었는데, 매점 안에서 노닥거리는 장면에서 송강호가 애드립도 많이 하는데 다 받아치더라. 김=관객에게 정독을 요구하면서 또 봉 감독식의 엇박자 리듬도 타게 한다는 게 쉬운 영화보기가 아닐 수 있다. 봉= 내가 그렇게 난해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여름방학 어린이 관객 겨냥 영화로 만든건데, 문득 공포가 밀려온다(웃음). 김=용가리나 왕마귀 영화는 아닌 것 같다(웃음). 특히 상업영화의 관습적 결말과 다르게 중요 인물을 결말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허탈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까지 든다. 봉=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찬반이 반으로 나뉘었지만 결말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 부분의 딜레마는 없었고, 죽음이 의미가 있는가, 그 죽음이 헛되지 않는가가 중요했다. 물론 비극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관객에게 위로를 준다고 생각했다. <친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오히려 비극적 엔딩이 한국에서는 상업적 감각처럼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었던 것같다. 김=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관객을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괴물>에는 그게 안보이고 한강의 기적이나 성수대교 참사 같은 알레고리를 억지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좋아보였다. 괴물의 크기가 너무 크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봉=나로서는 지금까지 만든 세편 가운데 영화적 재미에 가장 집착했던 작품이다. 장르적 관습을 깨면서도 그 클리셰를 따라가는 장면도 많았고. 괴물영화 장르에 본래 유치한 풍자적 기능이 있는데 <괴물>에서 굳이 풍자를 위해 독극물 방류 사건을 만든 게 아니라 2000년 주한미군 독극물 무단방류사건을 보면서 아전인수식으로 내 영화를 위한 사건이다 생각했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오래 전 구상에 괴물의 기원은 이거다라고 붙은 거다. 그러다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펠리컨이 물고기를 운반하는 걸 보고서 죽이는게 아리나 납치하는 괴물이라는 발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김=지금까지 컴퓨터그래픽을 많이 활용했던 한국영화는 대체로 실패했는데 이영화에서는 그래픽이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한정된 예산에서 포기해야 했다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나. 봉=어차피 한정된 예산이라 차라리 그 제약을 즐기면서 하려고 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는 컴퓨터그래픽 한 숏 만드는 데만도 1억원이 넘게 드는 데 그렇게 비교하면 이 영화의 괴물 숏에만 120억원이 들어가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죠스>를 찍을 때 모형 상어가 고장났을 때 스필버그가 그 유명한 죠스의 시점숏을 연출해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괴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괴물을 찌른 작대기가 부르르 떠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히려 연출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괴물의 실체 없이 촬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한강에 배우들을 비명지르며 뛰어다니게 하는 것도 민망하고, 스탭들까지 찍은 필름을 보면서 이게 뭐예요 그러니까 편집할 때까지 무척 힘들었다. 한마디로 할 짓이 아니었다. 김=다음 작품 계획은 뭔가. 봉=두번 다신 괴물영화는 안 할거다. 컴퓨터 근처에 가는 영화도 안 할 거다. 스탭들도 하도 고생을 해서 한강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더라. 차기작은 엄마와 아들 이야기인데 그래픽 같은 곳에 에너지 빼앗기지 않고 연출에만 집중하는 무척 아날로그적인 영화가 될 거다. 그 다음 작품으로 <설국열차>라는 제목의 프랑스 만화를 판권계약했다. 그건 규모도 좀 크고 에스에프적인 성격도 있어 준비기간이 꽤 필요한데 판권 만료가 2011년이라 부지런히 두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정리· 김은형·전정윤 기자 dmsgdu@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