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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8 17:37 수정 : 2005.02.28 17:37



작품·감독·여우주연·남우조연상 ‘알짜’ 석권
‘아카데미용’ 출품 스코시즈감독 5전5패 고배
단편애니 첫 후보오른 박세종씨 아쉽게 탈락

여성 권투선수의 옹골찬 주먹이 거대한 항공기를 격추시켰다. 여성 권투선수의 꿈과 좌절을 그린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비행기광이었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엮은 <에비에이터>의 2파전으로 모아졌던 제77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반면 11개 부문에 최다 후보를 올려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에비에이터>는 촬영상, 편집상, 의상상, 미술상, 여우조연상 등 가장 많은 트로피를 받았지만 ‘알맹이’는 모두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노장 대 젊은 감독의 대결로 펼쳐지던 여느 해와 달리 노장 대 노장의 대결이 눈길을 끌었던 올해 63살의 마틴 스콜시즈가 76살의 ‘백전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무릎꿇은 것이다. 한국인으로 처음 아카데미상 후보(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버쓰데이 보이>는 캐나다 크리스 랜드레스 감독의 <라이언>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 제77회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남우조연상의 모건 프리먼, 여우조연상 케이트 블란쳇, 여우주연상 힐러리 스왱크, 남우주연상 제이미 폭스.



몰아주기 벗어난 수상결과

시상식 전 <에비에이터>는 이번 아카데미의 최고 기대작이었다. 시상식 초반 미술상, 의상상, 여우조연상(케이트 블란쳇)을 차례로 받으며 순풍에 돛단듯이 수상행진을 이어갈 때만 해도 <에비에이터>는 올해의 주인공을 따놓은 듯 보였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한 작품 ‘몰아주기’ 현상이 뚜렷했던 탓이다. 지난해에도 <반지의 제왕 3:왕의 귀환>은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등 11개 부문에서 ‘싹쓸이’를 했다. 그러나 여우주연상이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욍크에게 돌아갈 때만 해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에비에이터>는 수많은 내기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스카 등정 마지막 발걸음에서 와르르 무너지고야 말았다.

5전 5패 고배를 마신 스콜시즈 감독


<에비에이터>의 마틴 스콜시즈 감독이 과연 감독상을 수상할까는 이번 시상식의 최대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작품과 달리 <에비에이터>를 매끈한 ‘아카데미용’으로 완성했다는 평은 그의 수상을 거의 확실시했다. 그러나 아카데미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글로브와 감독조합상 등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고배를 마시며 수상가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결국 올해도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금까지 <분노의 주먹> <예수 최후의 유혹>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으로 4번이나 오스카 감독상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마했다. 이번 결과로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 로버트 알트만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5전 5패한 감독으로 기록됐다. 게다가 80년에는 <분노의 주먹>이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보통 사람들>에 90년에는 <좋은 친구들>이 케빈 코스트너 감독의 <늑대와 춤을>에 패배했으니 배우 출신 감독들에게 그는 지지리도 운없게 삼진아웃당한 셈이다.

힐러리 스욍크 여우주연상 2연패

힐러리 스욍크(31)는 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올해의 수상에는 별 기대를 받지 못했다. 역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두번 수상한 배우들이 불과 10명에 불과한데다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경쟁했던 중견배우 아네트 베닝(<줄리아 되기>)과 올해 다시 경쟁하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우상으로라도 아네트 베닝에게 트로피가 돌아갈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을 했지만 오스카는 다시 ‘강한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시상식장에 올라 눈물을 흘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과연 이 상을 받을 만큼 내 인생에서 뭔가 이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스욍크는 이스트우드 감독을 비롯한 스텝과 지인들에게 감사의 말이 너무 길어져 중간에 말을 끊은 음악이 시작되자 “아직 음악이 울릴 때가 아니”라면서 수상자 가운데 가장 긴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흑인 남자배우들의 연기상 싹쓸이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미리 찜해놓은 듯 ‘당연한’ 수상결과를 받은 <레이>의 제이미 폭스(39)는 시드니 포이티어, 덴젤 워싱턴에 이어 세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한 흑인 남자배우가 됐다. 올해는 남우조연상 역시 흑인 배우인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모건 프리먼이 수상해서 남자 연기상을 모두 흑인이 수상하는 최초의 시상식이 됐다. 수상소감에서 제이미 폭스는 “나의 수상이 후배 배우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가난했던 유년시절 “내 연기의 첫 코치 였던 할머니”에 대한 가슴 뭉클한 사연을 꺼내놓아 객석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모건 프리먼은 무대에서는 간단한 인사로 소감을 갈무리했지만 무대 뒤에서 “두 흑인 남자배우의 수상은 할리우드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우리가 세상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는 말로 감격스러움을 드러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두번째 감독상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냉정하고 적확한 리얼리즘
70대감독 작품세계는 청년기

올해 아카데미의 스타는 단연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1930년생인 그는 70대 중반에 만든 25번째 감독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알짜배기 상 네개를 가져갔다. 지난해 그는 <미스틱 리버>로 평단의 열띤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반지의 제왕>에 안타깝게 밀려나더니 불과 1년만에 이런 영예를 안았다. 대단한 노익장이다. 배우로서 오스카 트로피를 안지는 못했지만 감독이자, 자신이 직접 차린 말파소 프로덕션의 제작자로서 93년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을 한꺼번에 받았다.

미국 공황기에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 군복무 기간 중 로스앤젤레스 시립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 <로하이드>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다. 챙이 긴 모자와 망토, 시가를 씹듯이 무는 그의 모습은 서부극의 아이콘이 됐고, 이어 71년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를 통해 형사 액션 영화의 아이콘까지 떠맡았다. 같은 해에 그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를 한 뒤 <서든 임팩트> <페일 라이더> 등 꾸준히 연출을 해왔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잡아 잔혹하게 응징하는 <더티 하리>의 해리 캘러한 형사의 캐릭터로 인해 미국에서는 ‘파시스트적’이라는 이미지에 묻혀 감독으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건 프랑스였다. 프랑스 평단은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그의 작품전을 열면서 그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 스스로도 88년 <버드>, 90년 <추악한 사냥꾼>을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하더니, 서부극의 관습을 뒤집는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마침내 아카데미의 공증을 받았다. <퍼펙트 월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미드나잇 가든> 등으로 이어져온 그의 작품연보에서 알 수 있듯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갈등과 기승전결 구조가 분명하고 장르 영화의 틀을 갖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래서 고전적이고 고지식하고, 한편에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그는 공화당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속 인물의 내적 고민, 그들의 관계망을 깊고 정확하게 포착한다. 아울러 대다수 할리우드 영화가 가진 온정주의와 해피엔드 지향성에 연연해 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이 수월하면서도 냉정하고 적확한 리얼리즘 드라마를 구축했다.

이번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한국 개봉 3월10일)는 이런 그의 작품 경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년의 권투 코치에게 31살 난 여자가 권투선수가 되겠다고 찾아온다. 코치는 딸이 있지만, 딸로부터 외면받는 처지다. 여자는 시골 출신의 극빈층으로, 권투가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코치는 거절하다가 결국 여자의 트레이너가 되고 승승장구하던 절정에서 여자가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진짜 절정은 그 뒤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딸의 유사가족의 감정이 이입된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쉽게 보기 힘든 순백의 상실감을 담아낸다. 한국 나이로 76살이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한창 진행 중이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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