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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9 19:55 수정 : 2006.08.10 15:05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는 21세기 변화된 노동 시장에서의 처절한 취업 전쟁을 스릴러 형식을 빌려 풍자한다. 정리해고 당한 한 전문직 노동자가 재취업을 위해 자기와 같은 전문 기술을 가진, 잠재적 경쟁자들을 미리 찾아가 차례로 살해한다는 이야기다. 살인의 계획과 집행, 죄의식의 발생과 만성화, 범행 발각 가능성과의 투쟁 등 범죄 스릴러 영화의 요소들을 모두 담아 긴장감 있게 영화를 끌고 간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아이러니가 생기고, 웃지 못할 코미디가 벌어지더니 이게 쌓여 급기야 영화는 ‘신자유주의 노동 시장의 비인간성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이자 ‘고발장’이 된다.

생활고 부닥친 실업자 가장
취업 위해 경쟁자들 연쇄살인
스릴러 틀에 담은 신랄한 풍자

소재나 설정 모두 매력적이지만, 특히 인상적인 건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방식이다. 주인공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다. 제지 디자이너라는 희귀 직종의 종사자로 제법 높은 연봉을 받으며 지내다가 정리해고됐다. 2년 동안 실업자로 있으면서 가산이 모두 소진될 지경에 이르렀다. 자녀 둘과 아내와 함께 꾸려온 중상층 가정의 기반이 흔들린다. 급기야 제지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가짜 구인 광고를 낸 뒤 이력서를 보내온 이들 가운데 취업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들 순으로 5명의 살생부를 만든다.(이들을 다 죽인 뒤, 현재 제지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이를 죽여 자기가 거기 취업한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살인까지 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여하튼 이 인물에게 관객이 심정적으로 편을 들어줄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막상 살생부에 오른 이들과 대면할 때, 잠깐 동안 보여지는 그들의 사연은 주인공보다 더 처참하며 그들의 모습은 주인공보다 더 성실하고 선하다. 오래된 실직생활로 가정이 파탄나고, 일용직을 구해 일하면서도 남에게 동정을 베풀려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비관을 이기지 못하고 주인공이 죽이기 전에 먼저 자살한다. 더 역설적인 건 주인공의 살인 행각에 대한 사회와 경찰의 반응이다. 주인공이 차를 고치러 갔을 때, 정비공장의 고참은 후배 정비원들이 자기가 물러날 때만 기다리고 있어 불안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그들을 미리 없애야 한다”고 말하자 이 고참 정비원은 박장대소한다. 위태롭게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그이지만, 주인공과 같은 발상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고급 유머였던 것이다. 경찰도 상상력이 주인공을 못 쫓아오기는 마찬가지다.

취직해 있건, 실업상태에 있건 노동자들은 불안하고, 나아가 자살까지도 하지만 남을 죽여가면서 그 자리를 뺏는다는 건 상상 밖에 있고 경찰도, 사회도 그렇게 여긴다. 이게 영화에서 표면적으론 주인공의 완전범죄를 돕는 쪽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남들을 죽을 지경으로 내몰면서 그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고발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끝까지 직설을 삼가면서 스릴러의 틀을 지키지만, 그 속에 신랄한 비판을 담아낸다.

〈액스…〉의 감독은 60~80년대 〈제트〉 〈계엄령〉 〈의문의 실종〉 등을 통해 제3세계 군부독재의 잔혹함을 고발했던 노장 코스타 가브라스(73)이다. 그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원작에 있던 어긋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모티브를 덜어내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대체했다. 기교 없이 담백하고 쉽게, 그러면서도 명증하게 형식과 내용을 맞추는 솜씨가 노장답다. 10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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