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5 18:09
수정 : 2006.09.15 18:14
감옥이란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다. 구속이란 일방적 억압의 지속을 의미한다. 현실의 감옥은 어디인가. 철창만이 감옥 이미지의 대명사일까? 개인의 신체자유에 대한 구속을 되짚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이다. 감독은 사실 신체 문제가 아닌 정신과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려 했다고 생각된다. 개인과 이념과 자유의지 그리고 폭력적 구속에 관한 감독의 메타포로서 일련의 장면들을 기억한다. 다큐는 사실적 기록이겠지만 감독의 눈에 비친, 감독이 지향한 카메라의 포커스는 이미 얼마간의 메타포를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레이션이 잔잔히 공명하고 있다.
신체를, 팔다리를 비튼다고 해서 그의 사고까지 왜곡할 수 있을까? 사유의 동판(銅版)에 돋을새김 된 사상의 글귀들을 고문으로 파낼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사상의 계면(界面)에서 폭력이라는 사생아가 태어난 것이다. 그 사생아의 투레질이 분열의 빗금을 그었고 틈은 점점 벌어져 다시는 봉합할 수 없을 듯하다. 신체의 감옥에서 풀려난 그들에게 자유는 없었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이미 감옥이었기에 그들에게 자유가 허락되는 곳은 비슷한 사람들의 땅 뿐이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음에야.
허리 잘린 한반도에는 서로의 공작원이 있었다. 대부분 죽임 당하고 얼마간 살아남아 수십 년 갇혀있거나 전향하기도 했다. 서로가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전향을 강요하곤 했다. 남측의 경우는 이러해도 북측의 상황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 공작원 문제를 동일평면에서 비교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이 수십 년간 고문과 회유를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자존심이란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외면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이 고백이 가장 아프다. 차라리 신념이었다고, 공산주의 만세라고 외쳤다면 쉽사리 그들을 외면할 수 있었을 게다. 인간의 근본존엄조차 발가벗겨진 고문실 안에서 애오라지 그들의 힘은 자존(自尊) 하나였던 것이다.
민가협을 비롯한 단체들의 손길이 고맙다. 그들에 대한 어떤 규정도 사실 이데올로기에 염색된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사회에 적응할 완충시간을 함께한 봉천동 주민들도 고맙다. 자립할 수 있는 밑절미까지 든든하게 챙겨주려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다. 필자가 인사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서로 다른 틀에 갇힌 우리들이 이념의 탁류를 건널 수 있는 노둣돌은 인간의 자존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존에 경의를 표하고픈 마음인 까닭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의 독재현실에 맞서 싸운 열사들이 아니다. 독재의 대척점에 공산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념과 자존을 구분해야 한다. 그들의 자유의지와 스스로 지켜낸 자존은 아름다운 투쟁이었지만 그 투쟁의 연장선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올려놓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썩었다 해도 공산사회보다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남한의 그들처럼 북한의 반공포로가 김일성 광장에서 자신의 불법구금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1999년 12월 31일을 기해 이 땅의 비전향 장기수는 모두 석방되었다. 납북자 가족을 생각하면 그들의 석방은 공허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양손에 상처 입은 사람이 동시에 치료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그냥 두자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상처를 볼모 삼아 다른 상처를 치료하자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의 아픔도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보여준 애정 이상으로 납북자 가족의 아픔을 공유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피 흘리면서도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전향적 접근이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자는 두려워 말고 폐쇄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
필자는 공산체제에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천박하다 해도 평양의 그것보다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부분도 있다. 김선명을 포함한 4명의 세계 최장기 수감자가 석방되던 날 그들의 꽃다발을 문제 삼은 안학섭의 발언이다. 그는 “우리를 심사하고 등급 매길 권리나 자격이 당신들에게 없다”며 사람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속성을 꼬집었다. 필자가 속해있는 사회는 이런 곳이다. 어떤 대상이든 줄 세워 가치전환 하는 곳이다. 천박함이 문신처럼 새겨진 사회에서 자존을 경외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끄럽고 진력나는 대목이다.
12년간 이들과 동행한 김동원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의 무채색 내레이션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만가만 디디며 다가오고 있다. 언제고 우리는 감독이 이름 지은 송환처럼 마음껏 오가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그날이 오면 감격으로 함께 울고, 그날이 와서 반갑게 웃었으면 좋겠다. 돌아간 그들과 남아있는 그들이 행복하길 기원한다. 남북 양쪽에 가족이 있어 차라리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쪽의 상처는 이제 덮어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느 비전향 장기수의 체념이 가시 되어 찌른다. 상처는 진정 아물었는가. 그를 생각하며 2000년 이산가족 상봉의 한 장면을 시로 전한다. 그들과 우리의 아픔은 진행형이다.
두 여인(이산가족 두 번째)
웃으면 볼이 예뻤던 아내와
핏덩이 어린 아들을 두고 온 사람
아니 돌아가지 못했던 사람
어린것의 울음소리가
파도보다 생생히 울리던 저녁마다
두어 평 남짓한 쪽방 너무도 넓어
청호동 바다가 보이는 집에
조그맣게 새 살림 차린 지도 이제 십여 년
소금물에 거친 손 가만 내밀며
형님이라 불러도 되느냐는 아내는
눈시울 적시며 고개 돌린다
반백의 아들 손을 꼬옥 쥐고 선 아내
소금기보다 더한 세월에 절은 그 손을
차마 잡지 못했다
아버지만 계셨어도 어머니가 이렇진 않았을 텐데
외면하던 아들도 엎드려 울어버리고
건강하세요 형님
언제고 우리 다시 만나면
이 양반 보내드릴게요 형님
두고 온 아내에게 손수건 건네며
젖은 미소 지어 보이는 아내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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