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9 21:03
수정 : 2006.10.09 21:03
연극 연출가로 첫 메가폰 ‘노근리 학살 사건’ 소재로
개런티 없는 배우·스태프 지휘 영화제목은 김민기 노래서 따와
‘작은 연못’의 이상우 감독
한창 제작중인 영화 〈작은 연못〉은 여러모로 화제작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엠케이픽처스가 제작하는 이 영화는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이 피란민 수백명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을 다룬다.
소재뿐 아니라 제작방식도 이채롭다. 8월7일 크랭크인해서 2회 정도 촬영을 남겨두고 있는 이 영화의 제작에 들어간 돈은 11억~12억원. 그런데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군중신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출연하는 마을 주민 역의 배우만 56명이다. 또 50년대를 재현해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그래픽도 많이 쓰인다. 그럼에도 초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건 스태프, 배우들이 개런티를 받지 않고, 나중에 이익이 나면 받는 투자 형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그래픽 회사도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건 감독이다. 이 영화는 극단 연우무대와 차이무를 이끌면서 〈칠수와 만수〉 〈늙은 도둑 이야기〉 〈돼지 사냥〉 등을 연출해온 연극 연출가 이상우(55)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처음엔 엠케이픽처스에서 시나리오만 부탁했는데, 진행하면서 감독까지 맡게 됐다. 그가 메가폰을 잡은 덕에 연우무대와 차이무 출신의 노련한 배우들, 강신일, 김뢰하, 문성근, 박광정, 박원상, 이성민, 전혜진, 최덕문 등등이 대거 출연하게 됐고 대학 연극반 선배인 화가 민정기도 자신뿐 아니라 식구들까지 데리고 출연했다.
“감독 제안받고 한시간 만에 수락했다. 차라리 내가 직접 하자. 이건 좀 이상한 영화가 돼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한 영화? 이 감독은 시나리오 앞장에 연출의 취지를 이렇게 썼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관습적인 태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오락성’을 버립니다. 전쟁 영웅도 없고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어떤 액션도 없습니다. … 이 영화는 말하자면, 세계 영화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영화가 될 것입니다. …” 조그만 마을. 아이들은 전국동요대회에 나가려고 노래 연습에 열심이고. 그 마을에도 전쟁이 덮쳐 피란길에 오르고, 그게 죽음의 길이 돼버리는 이야기. 무겁다.
“죽는 모습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걸 아예 안 하려고 한다. 쓰러지는 모습 정도와,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추고. 시체도 안 나온다. 시체 보여주면서 처절하다고 말하기가 싫어서. 상황 자체가 워낙 비참하니까. 그런데 계속 그러면 지치니까 유머를 살짝 얹었는데, 다른 마을 출신으로 피란민 대열에 섞이는 배우들이 있다. 차이무 출신의 송강호 등등, 그들이 깜짝 출연해 조금씩 웃겨주고.”
이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살아남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게 그래도 희망스럽게 다가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처음엔 제목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할까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바뀌고, 감이 익고, 아이들이 돌아와 자라고.”
마침내 잡은 제목 ‘작은 연못’은 김민기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우리 세상이 작은 연못 같은 조그만 생태계 아닌가. 그 안에서 치고 박는 게 무엇을 위해서인가 생각해보자는 거다. 노랫말처럼 서로 살이 썩어들어가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되는 건데.”
노래가 영화를 부드럽게 풀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 감독은 영화 속에 김민기의 곡 여러개를 삽입할 생각이다. “어느날 민기(이 감독과 김민기는 동갑내기 친구다) 음악이 맞겠구나 생각이 났다. 작업하면서 현장에서 맞춰보니까 잘 맞고. 민기 왈, 새로 곡을 만들진 못하니까 이전 곡들 중에 알아서 골라 써라, 그리고 저작권 분쟁을 하자.(웃음)”
최근 연극 연출가들이 영화감독으로 나섰던 일이 몇번 있었지만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이 감독은 영화 찍는데 겁이 나지 않았을까. “내가 실패하면 더는 연극쟁이가 영화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작할 때 걱정했는데 옆에서 좋은 얘기를 해줬다. (이 감독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박광수, 이창동, 김홍준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영화 테크닉에 대해) 몰라도 된다, 네가 하고 싶어하는 것만 알고 하면 된다’였다. 촬영 초기에 오케이를 빨리 하니까 뒤에서 웃고, 비웃고.(웃음)”
이 감독은 “소박하고 정직하게 찍자”는 신조에 따라 컷을 많이 안 나누고 길게 찍기로 가면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많이 잡았다. “문성근은 30회차 촬영에 23번 나온다. 그러면 주인공인데, 클로즈업이 단 두번이다. 계속 배경에 있는다. 대개 아이들이 클로즈업으로 잡히고, 어른들은 배경이다.”
당시 미군의 기록을 뒤지고 취재도 했던 이 감독은 “꼭 미군을 가해자로 짚기보다 전쟁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며 “전쟁은 실제로는 학살이 되고 그 피해자는 여자와 아이들인 만큼 전쟁을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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