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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6 18:08 수정 : 2006.10.26 18:08

2006년 11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부분 한국다큐멘터리 <우리학교>

“아키야마 요시히로를 아세요?”

아키야마 요시히로. 그를 안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난 2002년 가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보았다고 할 듯 하다. 부산 아시안 게임?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고2 박윤수는 하루하루 날짜를 흘려보내는 달력이 원망스럽기 시작하던 때니까. 이 사람에 대한 얘기를 접하고 이게 가능한 얘길까 싶었지만 이 나라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도바보(유도밖에 몰라서)라는 별명으로 재일교포 4세로 살면서 유도명문 긴키대 재학 때인 95년부터 3년간 관서지방대회에서 3연패. 일본의 유수 실업팀들로부터 귀화를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98년 초 귀국 부산시청 소속으로 열심히 매트를 뒹굴었다. 왜 그는 그 실력에 스카웃 제의까지 마다하며 이 나라에 왔던 걸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귀화는 일본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제패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3년만에 좌절 되고 말았다. 용인대학교 출신들이 심판, 선수, 주요 요직을 점령하다 시피한 이 나라 유도판은 일본서 유도를 배워온 그를 철저히 배격했다. 국가대표를 뽑는 시합때마다 애매한 판정승으로 그를 굴복시켰고 2군 시합때나 그에게 태극마크를 박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3년. 일본에서의 차별과 무시와 폭력도 견뎠던 그가 오히려 한국에서의 차별과 폭력 무시로 망신창이가 되어 돌아선다. 2001년 홀연히 일본으로 가버린 그는 귀화를 신청했고 다음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한국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당시 시합을 보던 관중들은 앞뒤 사정도 모르고 그에게 야유를 보냈고 언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학교를 보세요.”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특별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상영되었다. <우리학교>라는 친근한 제목의 이 다큐는 훗카이도에 있는 유일한 조선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1년간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여덟살부터 열아홉살까지 초중고등부 모든 과정이 같은 학교에 있는 이 곳은 재정 자립도가 (그나마)낮지 않은 학교로서 관내 조선인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이라고 한다. 다큐속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본의 많은 조선인학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월급을 못받는 건 다반사고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또 아르바이트를 하는 선생님들까지 있다고 하니 그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두 시간 가까이 스크린에 비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로서 받게 되는 각종 제도적 차별과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을 견디는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동정과 연민, 걱정이 아닌 존경섞인 놀라움과 충격이었다.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을 저렇게 하나로 묶고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일본열도가 긴장했을 때 언론은 일주일중사나흘은 감정 섞인 위험한 보도만을 내보냈고 우익세력은 검은 차량에 올라타 확성기로 조센징 다 쳐 죽이겠다며 학교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아이들은 눈에 띄는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고 등하교를 해야 했고 선생님들은 기숙사 아이들을 위해 밤새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 일본인들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까. 많아야 열아홉, 어리면 여덟살 아이들이 겪기에는 세상이 보내는 폭력이 감당하기 벅차 보인다. 그래, 어쩌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이 그 곳에서 영빈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의 북한행이 정체성에 혼란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달랐다. 북한은 아이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는 고향이 되어 주었다. 마치 어린 자식을 타지에 보낸 어머니가 고향에 온 자식을 만난 듯 그네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그리고, 여행 내내 그네들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손도 꼭 잡고 놓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다 읽혔다.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고국에 대한 어린 아이들의 애절함. 젖은 눈으로 주고받는 그들의 아픔.

“짝짝 짝짝짝!!! 개.한.민.국”

충격이다. 북한은 이렇게까지 하는데 남한은 어떤가? 한 유도선수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가 지키려 했던 정체성을 되려 우리가 짓밟고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이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그의 말에서 일장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새겨진 유도복을 입고 거친 이종격투기에 출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한국에 배신감을 느낀다. 같잖은 일렬종대로 줄을 쫙 세워 놓고 같잖은 기준으로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을 밀쳐내 밟아버리는 이 같잖고 엿같은 집단의식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남문고나 영산대학이나 군대나 직장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차별과 폭력이 넘실댄다. 자기네편 아닌 힘없고 말없는 사람들, 힘없어도 옳은 말 죽어라 해대는 사람들은 모조리 밟아 없애 버려야 할 적이다. 솔직히 생각하고 있으면 미칠 것 같아 밤에 잠도 안 온다. 그나마 연애하는 낙으로 살고 현실 도피하는 기분으로 영화나 보는 게 다다.

안에서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밖에서는 그 지랄들이 더하다. 가뜩이나 조그마한 나라 더 뺏어갈 것도 없는데 미국은 떠나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못해 아주 삶아먹을 기세다.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려는 중국은 이제 자신들의 정체성도 팔아먹으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36년 가까이 이 나라 밟아 놓은 걸로 만족하면 됐지 해마다 독도 망언에 우리 언론, 정가가 술렁이게 하는 재미에 빠진 일본은 포기할 줄을 모른다.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냉정하게 뒷걸음치고 알량한 배상금에 모든 과거사 청산 다 했단다. 뒤에선 애들한테 이상한 교과서 만들어서 헛소리나 해대고 이의 제기하면 내정 간섭이란다. 징그럽다. 그저 징그럽다. 안이나 밖이나 겁탈하려고 성기를 발딱 세운 짐승들 마냥 헉헉 대고들만 있다.

내가 봤을 때 제일 큰 문제는 내부 분열이다. 우리 안에서 뭉치지 못하니까 밖에서 우리를 함부로 대하고 있고 교묘한 자식들 그걸 역이용하고 있다.

그 분열의 시작은 교육이다. 학교보다 많은 학원들로 아이들이 내몰리면서 화합보다 경쟁을 배우고 좋은 대학 나와도 박사 학위 있어도 취업 어렵다는 언론이 겁주는 소리에 겁많은 엄마 아빠들 애들 뒷바라지에 여념 없다. 도덕 윤리 교육 슬그머니 사라졌고 민족, 통일 교육 죽은지 오래다. 그저 공부, 공부, 공부, 아니면 기술! 공부해서 출세하거나 기술이라도 배워서 밥벌이 하라는 어른들 태도, 이거 해결 못하면 우리나라 통일, 어림없다. 고등학생들 통일에 관심 없다는 리서치 조사 결과가 벌써부터 나오고 대학생들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보수 야당 대표 박근혜로 뽑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통일인가.

나라에서는 아직 한참 어린 남자 애들 모조리 군대에 데려가 2년 내내 사람 죽이는거 가르치고 정훈교육 한답시고 북한을 적이라고 내 친구들한테 내 동생한테 떠들어대는데 그렇게 세뇌되어 나오는 사람들이 이 나라 국민의 절반이다. 조·중·동의 가위질은 막을 수도 없다.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못된 심보로 진실왜곡에 사건조작 하는데 거기에 주렁주렁 얼씨구나 낚인 아저씨들이랑 말싸움 하고 있으면 입 아프고 속 무너진다. 그 아저씨들 눈빛 생각하면 어쩔 땐 무섭다.

아니라고 그건 아니라고 분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리학교>같은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자위도 해보지만 그 것도 순간이지 끝나고 나면 허무하다. 같이 다큐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 다들 나와 비슷한 심정을 안고 집에 가 잠들었을 텐데, 이런 다큐 초청한 부산영화제 관계자들 나보다 더 절실한 마음에 틀어줬을 텐데 다들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단지 이렇게 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본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일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알면 알수록 나는 더 모르겠다. 차라리 알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물어봐도 대답해줄 사람 없고 마땅한 대답 거리도 없다. 그저- 답답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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