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0 16:58
수정 : 2005.03.10 16:58
<쏘우>는 할리우드 입성을 꿈꾸는 감독 지망생들이 책상 앞에 붙여놓을 만한 ‘아메리칸 드림’의 가장 최근 성공사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제임스 완 감독은 자신이 썼던 시나리오의 가장 끔찍한 장면을 단편으로 찍어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로 보냈다. 입맛 까다로운 제작자의 눈길을 받는 데 일단 성공한 감독에게 120만 달러의 저예산이 주어졌고 그는 <쏘우>를 완성해 무려 제작비의 50배, 6천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건물의 지저분한 욕실에서 두 남자가 깨어난다. 대각선 거리에서 다리에 우람한 족쇄가 채워져 대화만 가능한 이들은 처음 보는 사이지만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스무고개처럼 하나씩 누군가의 지시가 드러나면서 둘은 서로를 죽여야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경고를 듣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단서가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쏘우>는 상업영화계에서 성공하고 싶은 감독 지망생들이 염두에 둘 만한 정답을 제출한다. 밀폐된 공간에 감금돼 믿을 수도 대결할 수도 없는 두 사람의 딜레마를 이야기의 큰 축으로 내세운 설정에는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함께 적은 예산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재치도 엿보인다. 그리고 실제 시나리오의 정교함과는 무관하게 보는 이들이 퍼즐 맞추기를 한다는 착각을 줌으로써 미스테리 구조 드라마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갈수록 폭력의 강도를 높여 젊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폭력의 카니발을 그럴듯하게 펼쳐낸다. 영화의 제목인 ‘톱’이 유일하게 기능하는 마지막 장면의 잔인함은 점잖은 관객으로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생의 의지나 의욕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처단이라는 점에서 <세븐>과 비슷한 범죄극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지만 <쏘우>는 인간사의 어떤 단면을 반영하거나 은유하기보다는 사실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놀자고 만든 영화다. 영화를 진지하게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두 남자의 조우 자체도 별 설득력이 없는데다 마지막 장면의 어처구니 없는 반전이 공분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단순한 게임을 하듯 장면과 장면을 이어 감상한다면 용서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아담을 연기한 리 와넬은 감독과 시나리오를 함께 쓴 작가다. 10일 개봉.
김은형 기자, 사진 미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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