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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틀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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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틀 선샤인
후버네 가족 6명이 여행길에 빌려 타는 차는 40년 전 히피들이 썼을 법한 노란색 밴이다. 이 ‘똥차’는 가족을 닮아 털털거리다 못해 사람이 밀어 시속 20㎞까지 속도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꿈쩍도 안한다. 한번 출발하려면 달리는 차 위로 한 사람씩 뛰어 올라야 하는데 그 꼴이 안쓰럽고 우스꽝스럽다. 어쩌겠나.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 수밖에. 이들의 여정을 다룬 코미디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감독 조너선 데이턴, 밸러리 패리스)은 무능력한 사람들끼리 어쩔 수 없이 엮인 가족이지만 어차피 노란색 밴처럼 털털거리는 인생, 같이 가니 조금은 더 따뜻하지 않으냐고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건다. 아웃사이더의 감수성에 가족애를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그리 낙천적이지 않으면서도 온기도 잃지 않는다. 허풍센 아빠·말없는 아들 등 가족 6명 똥차로 천㎞ 여행
막내딸 미인대회 참석 소동, 눈물과 웃음 뒤범벅 로드무비 아버지 리처드(그레그 키니어)는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개발해 침 튀기며 설명하는데 강의를 듣는 사람은 달랑 대여섯명이다. 이 이론을 팔아보려고 애쓰지만 이론의 약발이 자신한테도 안 먹히는 셈이다. 벌이도 안 좋은 그가 입만 열면 승자가 되는 법을 설파하니 어머니 셰릴(토니 콜렛)은 짜증이 솟구친다.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아홉달째 침묵수행 중이라 말은 메모지에 쓴다. “모두 싫어요” 따위다. 7살짜리 통통한 딸 올리브(애비게일 브레슬린)는 어린이 미인대회 ‘미스 리틀 선샤인’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며 할아버지(앨런 아킨)와 맹연습 중이다.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는 손주 드웨인한테 “젊을 때 여자랑 한번이라도 더 자라”라고 충고하는 한량이다. 자칭 프로스트 전문 석학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애인을 잃은 뒤 자살 시도를 한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가 이 가족에 얹힌다. 요지경 가족이 올리브가 출전할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까지, 1000㎞ 이상을 함께 달린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갖가지 코미디 기법이 동원됐는데 정교하게 배치돼 튀지 않는다. 절제된 개그가 리듬을 타며 딱 맞는 지점에 터져 큰 웃음을 만든다. 우선 캐릭터들이 부닥쳐 갈등과 유머를 동시에 자아낸다. 올리브가 프랭크에게 왜 자살하려고 했냐고 묻자 프랭크는 솔직하게 말한다. “남자를 사랑했는데 날 버리고….” 주류 질서에 편입하려고 발버둥치는 바른 생활 사나이 리처드는 화가 치민다. “애한테 그만해!” 프랭크는 아랑곳없다. “그런데 애인이 다른 남자한테 가버렸거든….” “그만!” 올리브는 프랭크의 말에 연방 고개를 끄덕인다. 의외의 상황이 만드는 뒤통수 치는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달리는 가족의 모습은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닮았다. 이 ‘찌질이’들에게 향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따뜻하다. 사고뭉치 할아버지도 때론 아버지의 처진 어깨에 손을 얹으며 “넌 시도했으니 낙오자는 아니야”라고 다독인다. 고등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티는 드웨인 앞에서 프랭크는 설득인지 모를 설득을 한다. “프로스트는 20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거든. 나중에 그 시절을 사랑한다고 말했어. 고등학교는 고통의 최고봉이지.” 이 영화의 개성있는 캐릭터들에 비해 주제는 너무 안전하고 진부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망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웅숭깊은 조언을 하는 장면에선 가족애를 강조하려고 캐릭터를 훼손한 것 아니냐며 찡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품은 웃음과 눈물은 매일 ‘고통의 준봉’이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에겐 위로가 될 만하다. ‘스매싱 펌프킨스’ ‘오아시스’ 등 걸출한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부부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미국에서 개봉 첫주 20위였는데 한달 만에 3위로 껑충 뛰고 7주 동안 10위 안에 머물러 뒷심을 발휘했다. 21일 개봉.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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