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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0 17:31 수정 : 2006.12.20 17:31

<올드미스 다이어리>

노처녀·할머니·홀아비 등 찌그러진 인생들에 보내는 신나는 응원가
시트콤 주연·연출 그대로인데 기발한 상상력 더해져 폭소만발

슬리퍼 한 짝을 손에 들면 저승사자와도 한판 붙는 여걸 영옥 할머니(김영옥)도 한숨을 쉴 때가 있다. “세 늙은이에 홀아비 아들에 노처녀 손녀에 쭈그렁 사돈 총각까지…” “어머, 어떤 집이 그래?” 너무 해맑아 주책없는 혜옥 할머니(김혜옥)는 자기 얘긴데 엉뚱한 소리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남들 보기엔 찌그러진 인생들’에게 보내는 유쾌한 응원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232화짜리 시트콤이었다. 짧은 에피소드가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시트콤을 2시간짜리 일목요연한 스토리로 엮겠다고? 그것도 시트콤 <멋진 친구들〉<달려라 울엄마>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한국방송 김석윤 피디(현재는 한국 방송 <개그콘서트> 연출)가 파견근무 형태로 감독을 맡아서? 물음표 여럿 붙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지난 18일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린 서울극장에는 폭소가 만발했다. 원작에서 보여줬던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유지하되 기발한 상상력을 보탰다.

잘난 사람만 연애하냐? 32살 솔로에 거의 백수 최미자(예지원)는 원작보다 망가졌다. 연애? “남자들은 차면서도 차는 이유를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일? “미자씨 아직 성우하시죠?” 들어오는 역할이란 게 고작 귀신이다. 게다가 시트콤에선 없었던 바람둥이 박 피디(조연우)까지 등장해 미자를 마음껏 골탕 먹인다. 원작에선 지 피디(지현우)가 마음을 못 전해 안달했다면 영화에선 미자가 처음부터 그에게 꽂힌다. 일상적인 말에서도 가슴 떨리는 미자에게 친구 윤아(오윤아)가 꿈 깨라고 찬물 끼얹자 “넌 행간의 의미를 못 읽는다”고 통박주지만 사실 미자가 행간마다 너무 많은 의미를 주고 있는 중이다. 예지원은 과장돼 보일 수도 있는 푼수 같은 미자 캐릭터에 딱 달라붙어 ‘옆집 사람’ 얼굴을 만들었다. “나는 누구한테 상처주거나 함부로 한 적 없는데 왜 다들 나한테 함부로 하는데!” 미자가 모든 ‘없는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해 확성기를 들고 격정 토로를 하는데, 이놈의 확성기까지 함부로 망가지고 난리다.

젊은 사람만 연애하냐? 원작 캐릭터를 그대로 살린 세 할머니 자매가 스크린을 누빈다. 영화에선 둘째 승현(원작에선 고 한영숙이 맡았다) 할머니의 연애가 미자의 멜로선과 함께 도드라진다. 홀로 아들을 키워 미국 보내놨더니 깜깜 무소식이다. 어느날 색 바랜 팬티를 빨랫줄에 걸던 승현 할머니는 불현듯 색깔 있는 팬티가 입고 싶어진다. “빤쓰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사는 맛이 달라진다. 영옥 할머니는 “인생은 빤쓰다”라는 선문답을 늘어놓을 지경이다. 이번엔 연애가 탐난다. 혜옥 할머니와 영옥 할머니가 둘째의 연애 상황을 중계하듯 서로에게 말하는 장면. 영옥의 목소리 대신 미자의 연애 상황을 보고 받는 친구 윤아의 목소리가 얹힌다. 얼굴은 할머니, 목소리는 젊은이가 되는 이 기발한 장면은 할머니과 미자의 연애담을 겹쳐 즐거운 화음을 만든다.

이런 만화 같은 장면들은 영화가 지루해질 새라 끼어들어 양념을 친다. 다만 일상성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줬던 원작의 담백함과는 다른 맛을 낸다.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만화 같은, 반대편에 선 두 축을 오가며 줄타기를 하는데 가끔 산만해지기도 한다. 에피소드들을 압축하다보니 정겨운 캐릭터를 다 만날 수 없어 아쉽다. 야무지고 똑똑했던 친구 윤아와 어리바리 지영(김지영)의 이야기는 빠졌다. 직장에서 치여 슬퍼도 슬픈 내색 못했던 아버지 최부록(임현식)의 무게감도 줄었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청년필름 제공


올미다 골수팬들 “흥행은 우리에게 맡겨줘”
제작에서 개봉까지 살펴보니


<올드미스 다이어리(올미다)>는 지난해 11월까지 1년여 동안 방송을 했고 평균 시청률은 15% 정도였다. 시청률이야 홈런은 아니지만 골수팬은 확보했다. 팬클럽 ‘올미다사랑방’(agit.miclub.com/oldmissdiary)에서 회원 6369명이 여전히 활동 중이다. 검증된 시트콤이 영화로 성공할 수 있을까? <올미다>가 그 첫 시험대에 올랐다.

올초 텔레비전 안 보는 차승재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대표가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에게 잘 된 시트콤을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지 물었다. 후보작은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안녕 프란체스카>였다. 김조광수 대표는 재밌겠다고 했다. <안녕…>은 신정구 작가가 참여하지 않아 무산됐다. 청년필름 기획팀은 <올미다>엔 골수팬들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이 그대로 나와 원작의 느낌을 살려야 하고 그러려면 김석윤 피디가 감독을 맡아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심현우 청년필름 기획실장은 “지현우씨는 이 작품으로 떴고 예지원씨도 사랑스런 캐릭터를 쌓았다”며 “김영옥씨 등 할머니역 3명도 다른 작품에서와 달리 <올미다>에선 주연이었기에 시트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컸다”고 말했다.

그런데 원작에서 진을 뺀 김석윤 감독은 손사래부터 쳤다. 박해영씨 등 작가 4명도 마찬가지였다. 청년필름 기획팀은 “미자와 지 피디의 로맨틱 코미디로 가는 게 아니라 우현 삼촌, 세 할머니의 이야기도 살아있는 가족 소동극이면 재밌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기획팀의 걱정은 황인뢰 피디, 이상훈 피디 등 방송 쪽에서 잘 나갔던 연출가들이 영화 쪽에선 성공하지 못한 전례가 아니었다. 여러 가닥으로 펼쳐졌던 시트콤의 에피소드 가운데 영화에 맞는 큰 줄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시작하니 일사천리. 두달 만에 제작진은 시트콤 초반 일거리 없는 미자와 까칠한 지 피디를 되살린 시나리오를 내놨다. 두달 반동안 진행된 촬영엔 틈틈이 팬들이 몰려들어 감독의 오케이가 떨어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올미다>의 흥행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골수팬들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겠다며 준비를 마쳤다. 시사회 단체관람이나 감독·배우와의 만남은 이미 마쳤다. 팬들이 쌈짓돈을 모아 홍보용 볼펜 3000개를 만들어 뿌렸을 정도다. ‘올미다사랑방’ 운영자인 이지영(33)씨는 “시트콤 <올미다>는 젊은이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까지 이웃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며 “영화도 이런 장점을 잘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를 살려 10대부터 50대까지 가입한 팬클럽 회원들은 21일 개봉 첫날 첫회를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15명을 초대해 함께 봤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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