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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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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카자흐스탄에서 여섯 번째로 잘 생겼다고 주장하는 리포터 보랏 사디에프가 자신의 엉망진창 마을을 소개한다. 금발 미인과 진하게 키스한 뒤 콧수염 기른 입이 귀에 걸렸다. “여동생입니다. 카자흐스탄 창녀 대회에서 4등을 했어요. 자랑스럽죠.” 연례행사로 유대인 몰아내기 경기가 열리는 요지경 세상이다. 20년 동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무려 27개나 본 베테랑 프로듀서 아자맛과 보랏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선진 미국의 문물을 담으러 떠난다. 보랏은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빨간 수영복을 입은 여배우 파멜라 엔더슨에게 반해 결혼하겠다며 다짜고짜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카자흐스탄 킹카 미국 횡단…실제 상황 속에 뛰어들어여성 유대인 동성애자…온갖 편견 까발리고 비웃기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감독 래리 찰스)는 화장실 코메디의 결정판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게 더럽고 웃긴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똥 누고 변깃물로 세수한다. 나아가 편견을 그러모은 화장실 코미디다. 대놓고 올바르지 않고 상식 따윈 애초에 없으니 기가 막혀 너털웃음이 나온다. 페미니스트들과 인터뷰하는 보랏은 기가 차다는 듯 피식 웃는다. “여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요? 여자의 뇌는 다람쥐만하다고 카자흐스탄 과학자들이 이미 증명한 걸요.” 그는 세상에서 유대인을 박멸해야 한다고 믿는데 하필이면 민박집 주인이 유대인이다. 밤에 유대인들이 바퀴로 둔갑해 방으로 들어온 줄 알고 줄행랑을 놓는다.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성과 인종에 대한 구린 편견을 어처구니 없을 만큼 해맑게 드러낸다. 그런데 <보랏>은 이 비상식적인 해맑음을 무기로 주류 사회의 구린 뒤를 후벼 파는 영리한 영화이기도 하다. 보랏은 온갖 편견을 과장 섞어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저 바보를 봐’라는 통쾌한 비웃음을 끌어낸 뒤 ‘사실 너희도 별다를 게 없거든’이라고 뒤통수를 친다. 유대인이 무서워 벌벌 떨던 보랏은 총기상에 들른다. “유대인을 쏴죽이기 좋은 권총 주세요.” 친절한 주인 아저씨는 총 몇벌을 보여주며 기능까지 꼼꼼하게 말해준다. 보랏은 아쉽게도 외국인이라 총을 사지 못한다. 로데오 경기장에서 만난 미국인은 보랏에게 충고한다. “콧수염을 잘라봐. 회교도 같지 않고 이탈리아인처럼 보일 거야.” 동성애자를 처형하자는 데 합의를 본 두 사람은 손을 맞부닥친다. 대학생들의 차를 얻어 탄 보랏은 거기서도 의견 일치를 본다. 얼큰하게 취한 학생들은 “여자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자”며 서로 어깨를 건다. 실제로 이 대학생들은 소송을 내며 출연 장면 삭제를 요구했다. “제작진이 술을 먹인 뒤 주문해서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했고 미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런 소동을 몰고 다닌 까닭 가운데 하나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버무렸기 때문이다. 제작진 8명은 미국을 횡단하며 보랏을 실제 상황에 던져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찍어 픽션과 섞어 넣었다. 너무 황당해 허를 찌르는 보랏은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바론 코헨이 창조했다. 중산층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이 괴짜는 멍청한 래퍼 캐릭터 ‘알리 지’로 활약해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이미 수많은 저명인사들을 놀렸다. 특기인 황당한 질문 날려 초대 손님을 화나게 하거나 당황하게 만들기로 그는 이미 슈퍼 스타다. 영화는 외계인의 시각으로 지구를 보듯 이방인의 눈을 통해 미국 문화를 조롱하는데 그 의도에 동의하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할 수 있다. 미국을 조롱하는 지렛대로 쓰여 한 묶음으로 희화화된 카자흐스탄은 영화와는 사뭇 다른 나라이며 실재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이면 됐지 굳이 목성이건 화성이건 그들의 개별성을 설명해 줄 필요 없듯이 제작진에겐 카자흐스탄이건 우크라이나이건 미국 문명과 대비될 수 있는 제3세계 낯선 어느 곳이라면 상관없어 보인다. 어찌됐건 1800만달러를 들인 이 저예산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 둘째주까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개봉 첫주 1위 행진은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유럽 17개 나라로 이어졌다.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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