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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빌 콘돈 데뷔작
인위적인 감동 배제
에로틱한 성적 묘사도 거세 영화 <킨제이 보고서>는 ‘킨제이 보고서’로 알려진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이면서 킨제이 보고서의 내용인 인간의 성행위를 솔직하고 방대하게 드러낸 ‘섹스영화’다. 전기영화라면 예의 가슴 묵직한 감동의 코드가, 섹스영화라면 끈적한 느낌이 담기는 게 흔한 일이지만 이 영화로 감독 데뷔한 <갓 앤 몬스터>와 <시카고>의 시나리오 작가 빌 콘돈은, 평범한 전기나 섹스영화에서 잘 쓰이지 않는 건조한 방식으로 오히려 진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킨제이 보고서>의 시나리오도 직접 쓴 빌 콘돈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기영화라면 으레 등장하는 ‘가슴뭉클함을 유도하는 극적 장치’를 도려냈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영화화하기 위해 킨제이가 리서치 당시 사용했던 인터뷰 기법을 영화 전반에 활용하는 등 다큐멘터리적인 설명 방식을 택했다.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적 욕망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배우고 자란 킨제이(리암 니슨)는 성인이 돼서야 아버지의 권위를 거스르고 엔지니어의 길을 벗어나 동물학 연구자가 된다. 혹벌 연구에 미쳐있던 그는 헌신적인 아내(로라 리니)를 만나면서 성에 눈을 뜬다. 그러나 무지해서 더 궁금한 성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학자적인 탐구정신은 그로 하여금 1만8천명을 대상으로 섹스 리서치를 벌이도록 추동하고 1948년 세상에 나온 <인간 남성의 성적 행위>는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감독은 어린 시절의 성적억압이 성인이 된 킨제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성 연구자에서 전투적 성 실험가로 나아가는 킨제이의 이력을 보고서 기술하듯 차분하고 냉정하게 따라간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성은 에로틱한 밀실의 속삭임이 아니라 무지한 시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 삶의 양태이자, 생물학자 킨제이의 연구대상일 뿐이다. 심지어 킨제이가 그의 조교와 동성애를 나누고, 킨제이의 아내가 또 그 조교와 성생활을 즐기는 장면에서조차도 범상한 관객들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린 채, 에로틱한 분위기나 성적 묘사가 배제된다. 아슬아슬 성을 덤덤하게 그리면서 반대로 인간의 성적 행동을 학문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킨제이의 열정은 더욱 가치 있고 본받을 만한 것으로 부각된다. 감독의 말을 빌려 보면, “킨제이는 각각의 사람들은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보편적이다’, ‘드물다’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다. 빌 콘돈 감독은 그런 킨제이의 삶과 연구결과에 새삼 주목해 ‘보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의 의도를 존중한다면 <킨제이 보고서> 역시 ‘드물다’라고 얘기해야지, ‘비정상’이라고 얘기해서는 안 될 듯하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킨제이의 연구는 과학이 아닌 사기”라며 <킨제이 보고서> 개봉을 빌미로 음란 연예 오락물 제작 지원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입법 운동 등 성도덕 전쟁에 나섰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13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올댓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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