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1 18:27
수정 : 2005.06.01 18:27
한 남자가 한적한 시골마을 부근의 고속도로 밤길을 달린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운전하다 갑자기 뭔가를 치게 된다. 차를 세우고 확인해보니 사람이다. 사고가 일어난 시각은 밤 11시14분. 때마침 다가온 경찰에게 현장을 들킨 이 남자는 연행되던 도중 소홀한 감시를 틈타 도망치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각 부모 몰래 차를 몰고 나온 십대 소년 3명은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또다른 곳에서 누군가를 친다. 공교롭게도 역시 밤 11시14분이다.
한편 인근 공동묘지에선 한 중년 사내가 주검을 발견한다. 살펴보니 조금 전 자신의 딸과 함께 나간 딸의 남자친구다. 딸이 무슨 일을 저질렀음을 직감한 그는 몰래 뒷처리를 하기로 마음먹고, 주검을 다리 밑 고속도로로 던진다. 시계는 밤 11시14분을 가리키고 있다. 딸은 딸대로 사건을 조용히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에는 얼핏 서로 무관한 듯한 5개의 에피소드가 차례로 나열된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내 각 에피소드들 사이에 뭔가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등장인물이 일부 겹치는 것은 물론, 각 인물들의 행동이 다른 사건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영화는 마치 퍼즐과도 같다. 하나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퍼즐의 조각들은 묘한 흥분과 희열을 맛보게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퍼즐 조각을 끼워맞추면 영화는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로 완성된다. 속도감 있게 펼쳐진 5개의 에피소드가 군더더기 없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각 에피소드가 결합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관객들은 뭘 위해서 그토록 퍼즐을 끼워맞춰온 것인지를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퍼즐 조각을 끼워맞추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퍼즐은 원래 뭔가를 위해서 맞추는 게 아니다. 그저 맞추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놀이다.” 단편으로 기본기를 닦은 그레그 마크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힐러리 스웽크,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 등이 출연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