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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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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잘 곳이 없어서 “하룻밤만 재워줄래?” 하고 친구집을 전전하는 20대 여성 미소. <소공녀>의 미소는 대학 중퇴 후 제대로 된 직장 없이 일당 4만5천원을 받는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다. 과거 기준대로라면 구제가 불가능한 ‘사회낙오자’로 평가받기 딱 좋은 상황. 하지만 미소는 정해진 기준에 구속되지 않고, 담배와 위스키 같은 기호 식품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제멋’을 지닌 요즘 여성이다. 큰 키에 독특한 스타일, 건조한 화법으로 무장한 이솜의 당당함과 어우러지고 보니, 미소의 라이프스타일이 한층 더 멋지고 부러워진다. 이솜은 판타지와 리얼함을 이종교배한 <소공녀>의 독특한 설정 안에서, 미스터리함과 사실성 두 가지를 모두 획득하는 과제를 수행해낸다. 기존 상업영화 위주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소공녀>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이 영민한 배우는 지금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에 꼭 맞게 소화해냄으로써 자신의 색깔을 입증해낸다. -<범죄의 여왕>(2015)을 찍은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한 작품이다. <범죄의 여왕> 때 402호 고시생 경진숙으로 잠깐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기도 했는데, 그때 이미 <소공녀> 출연 이야기가 오간 건가. =<범죄의 여왕>은 <족구왕>(2013)을 만든 광화문시네마 작품을 보고 좋아해서 먼저 같이 하자고 연락했었다. 그땐 2회차밖에 촬영 안 해서 현장 분위기를 많이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범죄의 여왕> 개봉 때 <소공녀> 쿠키 영상을 보고 이 작품에 호감을 가졌다. 처음에는 미소의 연령대가 30대 이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지금보다 좀더 나이 많은 배우를 찾았었다. 그런데 중간에 연령대가 바뀌면서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님에게 연락이 왔다. 미소 역을 해보지 않겠냐고. -그간 참여한 작품들을 보면 독립영화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 <하이힐>(2014), <마담뺑덕>(2014), <대립군>(2017) 등 상업영화 출연작 비중이 훨씬 높다. 그래서 <소공녀> 출연이 조금은 의외의 선택으로 보였고, 잘 맞을까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시나리오는 <대립군> 작업을 시작할 때 받았다. 회사나 누구의 의견과 상관없이 내가 무척 하고 싶었던 작품이어서, 물어보지도 않고 ‘난 무조건 할 거야’, 이런 마음이 컸다. 원래 내 의견을 회사에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고, 차기작도 독립영화, 단편영화 상관없이 모두 본다. 배우 입장에서는 실험적인 작품,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영역에 늘 관심이 많다. -특히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역할이라 배우로서 욕심도 컸을 것 같다. <소공녀>의 어떤 지점에 매력을 느꼈나. =작품을 하다보면 역할의 크기를 떠나, 이렇게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여성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반가운 작품이고, 광화문시네마의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도 의미가 컸다. 내가 좀 ‘우정’ 같은 사람들간의 관계를 좋아하는데, 서로서로 응원해주고 존중해주는 이곳 문화가 좋아 보였다. 또 <족구왕> <범죄의 여왕> 같은 광화문시네마의 전작들이 있어서, <소공녀>가 어떤 작품일지 색깔이나 이미지가 그려지더라. 전고운 감독님이 여성감독인 점도 나한테는 즐거운 작업 환경이었다. -기호품을 소비하기 위해 집을 나오는 미소의 선택. 지금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미소의 결정이 다소 비약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나. =처음에는 나도 미소가 비현실적인 지점이 많아서, 미소의 친구들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하나하나 미소의 선택에 대해서 질문을 하니 끝이 없더라. 그때부터는 미소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했다.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현장에 가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촬영 내내 미소의 옷을 입고 현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미소와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그냥 미소가 된 것 같았다. 미소가 되어야지, 노력해야지 했던 고민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1년이 지난 지금 미소를 본다면 ‘넌 참 멋진 친구구나’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멋진 존재로 보인다. -생계보다 취향을 택하는 미소는 현재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을 여실히 반영해주는 캐릭터다. 집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걸 감내하고 살았던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 이 시기를 정말 잘 파악한 캐릭터이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요즘 많이들 쓰는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소확행(일상에서의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란 말처럼, 결국 이런 삶의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나도 스케줄이 없을 때는 사소한 것들로 삶의 충전을 많이 받는 편이고, 이런 것들이 일하는 데 더 큰 힘을 준다. -본인은 어떤 것들로부터 위안을 받는가. =매일 마시는 커피가 내겐 정말 중요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여유롭게 수다떨고 산책하는 것도 좋다.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 상영티켓을 모았는데 스스로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해서 모은다. (웃음) 잘 보관하려고 코팅까지 해둔다. -집에서 코팅까지 하나. =이걸 하려고 코팅기를 샀다. 중학생 때 영화산책부였고,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혼자 보러 다닌다. 개봉하는 영화라면 뭐든 다 본다. 내가 출연한 영화가 개봉할 때도 다른 개봉작들 다 보러 다닌다. (웃음) 좋은 영화를 먼저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크고, 영화 보고 혼자 느끼는 지점들도 많다. 같은 시기 개봉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쓰리 빌보드>도 빨리 보고 싶다. -<소공녀>에서 즉흥적인 상황의 연기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정해진 대본은 어느 정도였나.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사전에 연습하고 리딩을 최대한 많이 하며 집요하게 파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현장이었다. 사전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 감독님이 대본대로 읽는 느낌을 안 좋아하셔서 즉흥연기를 많이 주문하셨다. 정해진 대사는 있지만 상황 안에서 배우들이 더 자연스러운 걸 찾아가는 거다. 그게 배우들한테도 스탭들한테도 편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서로 더 끈끈해지면서 의견도 많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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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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