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21 05:00
수정 : 2018.09.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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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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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하면 최민식·김명민” 부담에
사극 도전 두번이나 고사하다
“자꾸 재벌2세만 할 순 없잖아”
‘실패해도 괜찮아’ 모험 강행
젊고 사려깊은 성주 양만춘
‘교감형 리더십’으로 그려
‘강인한 카리스마’ 전형성 탈피
‘200억 영화’ 흥행 견인에 올인
“한반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
관객들이 ‘양만춘’ 검색하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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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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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이 고구려의 양만춘 장군을 연기한다고?’ 영화 <안시성>(상영 중)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배우 조인성(37)의 이름 뒤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드라마 <학교3>의 꽃미남 반항아로 데뷔해 <별을 쏘다>, <발리에서 생긴 일>, <괜찮아, 사랑이야>, <마들렌>, <클래식> 등 주로 멜로물에서 여심을 녹이는 ‘재벌 2세’나 ‘백마 탄 왕자’ 이미지를 보여줬던 조인성이 장군이라니…. 수염이 덥수룩하고 목소리는 괄괄한 ‘전형적인 장군’과 조인성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성운 만큼이나 멀어 보였다. “인성이형, 사극은 한 세 번 정도는 고민하고 결정하자”는 누리꾼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아, 저도 양만춘은 아닌 것 같아 시나리오가 왔을 때 두 번을 거절했어요. ‘장군’하면 <불멸의 이순신> 속 김명민 선배님이나 <명량> 속 최민식 선배님이 각인돼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특히 시나리오를 보니 전쟁신이 엄청나더라고요. 제작비도 200억대. 어휴~ 솔직히 두렵고 부담스러워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핑계로 피해 보고도 싶었죠.”
영화 <안시성> 개봉을 즈음해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인성은 스스로 “분위기를 업시키려고 오버하는 중”이라고 했다. 시사회 전까지 난무했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는 호평이 쏟아지자 조금은 안도하는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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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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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 역을 놓고 고심하던 그의 망설임에 쐐기를 박아준 것은 ‘이제는 변화를 줄 때’라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단다. “자꾸 재벌 2세 역할만 할 순 없잖아요? 어제는 S전자 둘째 아들, 오늘은 L전자 셋째 아들…. 자기복제하다 끝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도전이 실패한다 해도 도전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용기를 냈죠.”
사실 영화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면, 조인성은 꽤 모험적인 선택을 해왔다. 트로트 ‘땡벌’을 신나게 부르던 <비열한 거리>의 깡패 ‘병두’가 그랬고, 파격적인 동성 정사신을 선보였던 <쌍화점>의 ‘홍림’이 그랬다. 그럼에도 훤칠하게 잘~생긴 외모는 왠지 그의 이미지를 ‘백마 탄 왕자’에 묶어뒀다. 이번엔 좀 다르다. 검게 그을려 잡티투성이인 피부, 덥수룩한 수염, 허술하게 틀어 올린 머리까지 <안시성> 속 조인성은 ‘잘생김’을 포기했다.
“(정)우성이 형님이 그랬어요. ‘남잔 잘 생긴 게 최고’라고. 하하하. 농담이고요. 무엇보다 자기 맡은 임무에 충실한 남자의 모습이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 아닐까요? 이번 영화에서는 열심히 싸우는 게 결국 잘생김이겠죠. 그리고 사실 이제 잘생김은 후배인 (남)주혁이에게 넘길 때도 됐고요.”
잘생김을 내려놓은 조인성은 <안시성>에서 젊고, 인간다우며, 사려 깊은 성주 양만춘을 연기해냈다. 성민들의 경조사 하나하나를 챙기고, 부하 장수를 의리와 형제애로 통솔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준다. “전형성에서 좀 탈피하고 싶었어요. 흔히 ‘카리스마’하면 ‘강인함’을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카리스마’의 사전적 의미는 ‘신이 내려준 특별한 능력’이래요. 양만춘은 빠른 두뇌 회전과 뛰어난 전략전술을 구사할 뿐 아니라 성민들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어요. 그 자체가 이 캐릭터의 새로운 카리스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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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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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억짜리 사극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안시성>은 벌써부터 ‘고구려판 <300>’, ‘고구려판 <트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화끈한 물량 공세로 박진감 넘치는 전투신과 압도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촬영할 땐 ‘이러다 죽겠구나!’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갑옷 무게만 20㎏인데, 그걸 입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니 허리, 골반,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했죠. 게다가 올여름 얼마나 더웠어요. 어휴~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촬영 내내 진통제를 달고 살았죠.” 처절한 전투신을 처절하게 찍다 보니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 싹튼 ‘동지애’는 덤이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다 함께 “이제 살았다”고 부둥켜안고 환호했을 정도란다.
<안시성>에 대한 또 다른 수식어는 ‘고구려판 <명량>’이다. ‘국뽕’을 바가지로 퍼붓는 장면이 연이어 쏟아진다. 배경음악이 그 선두에 서서 ‘이래도 자랑스럽지 않으냐’고 외친다. “한반도엔 승리의 역사가 많지 않잖아요. <안시성>은 몇 안 되는 엄청난 승리의 역사예요. 우리 민족은 한반도 안에 묶여있지 않았어요. 만주와 연해주를 호령하던 역사가 있었죠. 저는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에 ‘양만춘’, ‘고구려’를 검색하는 게 <안시성>이 내놓을 가장 좋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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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인성. 아이오케이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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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은 이제 200억 규모 영화의 ‘타이틀 롤’이 주는 무게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잘 아는 21년 차 배우다. 그래서 홍보도, 인터뷰도 사력을 다해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했다. “촬영할 때 당나라 20만 대군이 몰려온다는 데 상상이 안 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20만명이 저 허허벌판에 열 맞춰 서면 대체 어느 정도지? 그런데 <안시성> 손익분기점이 560만(해외 판매 수익 제외)이래요. 하하하. 제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거죠.”
그래서 요즘 ‘예능 나들이’에도 거리낌이 없는 걸까? ‘배우가 어떻게 예능에 나가?’라는 편견 따윈 없단다. “다들 잊으신 것 같은데, 제가 예능국 <뉴 논스톱> 출신이에요. 하하하. 그 해에 연예대상 시트콤 부문 우수상도 받은 걸요? 가벼우면 뭐 어때요? 그게 배우 조인성의 치명적 단점이 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는데.”
배우로서 매 순간을 즐길 만한 ‘내공’은 아직 없다면서도 “인터뷰 하는 지금 이 순간, 이 찰나가 즐겁다”는 립서비스를 날리는 ‘유연함’을 배운 조인성.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일만 빼고는 뭐든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편안함과 관대함이 생겨 좋단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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