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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의 '킹콩'과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 ⓒ U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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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하다. ⓒ U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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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을 자극하는 '킹콩'의 애틋한 사랑
1933년판 <킹콩>의 로맨스는 '킹콩'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까웠고, 여주인공 '페이 레이'의 모습은 그 짝사랑을 미처 짐작하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1933년판 <킹콩>은 오히려 이런 점이 '킹콩'의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느끼게 하는 효과를 만든다. 1976년판 <킹콩>은 여배우 '제시카 랭'과 '킹콩'의 로맨스를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 또다른 장점을 만들었지만, '제시카 랭'에게 '킹콩의 애인'이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큰 숙제를 만드는 부담도 되었다. '전형성'에 대한 선택이 어긋나면, 이런 부정적인 면이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 서른을 넘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나오미 왓츠' 역시 이 부담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 로맨스가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연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녀만의 풍부한 표정도 이 로맨스의 빛이 확실하게 발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지만, '킹콩'의 풍부한 표정과 절박한 괴성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조차도 애절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킹콩'이 인간에 가까운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픽 화면이 아무리 박진감이 넘치고 화려했다 한들, 두 주연의 확실한 연기와 환상의 호흡이 아니었다면, 피터 잭슨의 필사적인 노력의 결정체인 그래픽 화면은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픽 화면은 어디까지나 '종'일 뿐이다.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배우의 연기와 호흡이다. '나오미 왓츠'는 피터 잭슨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장면도 그 애절함이 오히려 1933년판을 능가하는 뚝심을 보이고 있다. 환상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두 캐릭터의 찰떡 궁합이 이 영화를 전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최고의 영화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3시간의 부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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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라이트 중 한 장면. 티라노와 킹콩의 대결. ⓒ U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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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데, 이 영화의 3시간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상영시간이 보통 1시간 40분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현대 영화의 경향으로 비춰봤을 때, '3시간'이 관객에게 주는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용이 알찬 3시간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깊이있는 영화를 무리하게 짧게 연출하다 실패한 영화들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이 뚝심있는 3시간은 그보다 훨씬 알찬 시간이 될 수 있다. 길어도 이렇게만 길다면, 시간이 길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피터 잭슨의 <킹콩>은 단점을 찾을래도 찾기가 힘든 영화다.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두 캐릭터의 애절한 사랑의 뒤에 숨겨진 자연과 인간의 이질적인 관계나 진정한 사랑과 우정의 의미 등, <킹콩>은 관객에게 많은 여운과 감동을 안기고 있다. 수준 이하의 영화들이 판치고 있는 최근의 할리우드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충분한 영화로 볼 수 있겠다. 그 대단하다는 '해리 포터'도 한국에서는 벌써부터 '킹콩'에 밀리기 시작했다. '마법사'와 '괴수'의 대결은 아무래도 '괴수'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렇듯 <킹콩>에 대해 흠을 잡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끼다 보니,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대한 궁금증도 만만치 않게 커진다. <킹콩>이 먼저 개봉했고, 너무나도 압도적인 재미를 선보인만큼, <킹콩>은 아무래도 심형래 감독에게 어느 정도는 부담이 될 영화로 보인다. 대한민국 전체가 성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영화인 <용가리>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심형래 감독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심형래 감독 역시 피터 잭슨 못지 않은 뚝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이라는 점에서 그 기대는 여전하다. '킹콩'과 '발키르(디-워의 괴수)'의 한판 승부가 벌어질 올 겨울, 영화 관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킹콩'이 이미 위력적인 모습으로 관객을 설레게 만들었으니, '발키르'는 더욱 압도적인 이미지와 깊이있는 이야기로 그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피터 잭슨 감독이 <킹콩>을 아무리 압도적인 영화로 만들어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거는 기대가 더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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