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3 14:08
수정 : 2005.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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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존 웨인 콤비의 불멸의 서부극 <역마차>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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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명장'으로 거듭난 이유는?멀게는 존 포드와 세르지오 레오네, 그리고 로저 코먼과 조지 로메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우위썬(오우삼)과 기타노 다케시. 거기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심형래.
얼핏 봐서는 왜 이들을 같이 나열했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이들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영화적 개성을 유지하고 있는 감독들이며, 연출한 영화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봐도 무방한 감독들이다. 특히 존 포드가 창시한 서부극은 그 시절 미국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었고,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런 고전적인 서부극에 유럽의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가미시킨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특히 'B급 영화의 대부'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로저 코먼은 장르 영화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끼워 상영하는 영화' 정도로만 인식되던 B급 영화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였던 로저 코먼은 저예산 영화에 대한 거대 영화 제작사의 간섭과 통제를 피해 독자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전설적인 SF 영화인 <터미네이터>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런 로저 코먼이 애초에 추구했던 장르는 짧은 시간 내에 적은 예산을 투입해 제작할 수 있었던 호러 장르였다. 그가 토양을 굳건하게 확립해놓은 호러 장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 시리즈를 통해 등장한 '혜성' 조지 로메로의 출현과 더불어 폭넓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킹콩>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피터 잭슨 역시 <데드 얼라이브> 등을 통해 기존의 호러 장르에서 더 섬세하게 분화된 스플래터 호러 장르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따라다녔던 감독이다. 돋보였던 조지 루카스의 도전 의식앞서 언급한 명감독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굳건하게 확립시킨다. 그리고 감독의 개성이 살아있는 그만의 영역은 하나의 '장르'로 굳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소룡의 영향이 여전했던 그때, 초기에는 무협 액션을 주로 연출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우위썬의 <영웅본색> 시리즈 이후로 비슷한 형식의 '홍콩 느와르'가 오랜 시간 동안 홍콩 영화계의 주된 장르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홍콩 영화계는 우위썬의 할리우드 진출 이후에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영화만 지속적으로 쏟아내다가 큰 위기를 맞이했다. 물론 '느와르' 이외에도 <지존무상>나 <도신> 시리즈 등의 도박 영화나 일명 '교주님'으로 불리우는 주성치의 코믹 액션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한정된된 제작 패턴은 홍콩 영화계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겪는다. 한국 영화 역시 최루성 강했던 멜로 장르를 통해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한 덕분에 1990년대 중반까지는 암흑기를 거쳤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결국 새로운 장르의 출현, 그로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장르의 활성화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도전 의식'이다.조지 루카스를 정상의 위치로 올려놓은 <스타워즈> 시리즈만 해도 그의 절친한 친구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조지 루카스는 그런 이유로 15만 달러 정도의 연출료와 각본료를 받았지만, 후속편과 캐릭터 사업의 판권, 그리고 캐릭터 상품권의 40%를 보장받는 계약을 이용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의 시나리오를 본 영화 관계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과는 달리 <스타워즈>는 시리즈 3개작만으로 개봉수익이 무려 18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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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워즈> 시리즈, 이 시리즈는 조지 루카스의 도전의 열매였다. ⓒ 루카스 필름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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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 영화, 확실히 소재는 다양해졌다. 그러나...최근의 한국영화는 분명히 그 소재의 활용 면에서는 대단히 다양해졌다는 긍정성을 가진다. 흥행신화의 첫 발을 디뎠던 <쉬리>는 그 이전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액션과 총격전을 통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으며, <넘버3>와 <친구>, <조폭 마누라> 역시 '조직폭력배'라는 새로운 소재를 이용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다. 게다가 김성홍 감독의 외로운 도전만이 있었을 뿐, 기본적으로 불모의 장르에 가까웠던 스릴러 장르 역시 젊은 영화인들의 꾸준한 도전으로 이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공포 장르 역시 <여고괴담>의 대성공 이후로 꾸준하게 속편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한국영화가 소재의 다양화에는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하지만 그 이후에 유행했던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 영화의 새그들이 '명장'으로 거듭난 이유는?로운 흥행 신화는 오히려 한국영화를 단단히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도전의식이 결여된 채, 그 짭짤한 수입만을 생각하며 '최소한 기본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안이한 의식을 가졌던 일부 영화인들은 앞다투어 이들 영화의 아류작을 연출했지만, 관객들이 꾸준히 외면해준 덕분에 최소한 허약한 각본의 억지투성이 아류작은 그 출현 빈도가 줄어들게 됐다. 공포 장르의 경우, 어떤 소재를 다루고 있느냐에 따라서 대단히 다양한 장르가 분화된다. 조지 로메로는 일관되게 좀비 영화를 연출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피터 잭슨은 스플래터 호러의 전문가였다. 게다가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슬래셔 호러도 그에 못지 않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전통을 유지해왔다. <여고괴담>의 성공 이후로 한국의 공포 장르는 그 아류작의 생산에는 열성적이었지만, 그로부터 다양한 장르를 분화시키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든 편이다. 한국에도 피터 잭슨과 샘 레이미가 초창기에 연출했던 B급 호러 영화를 열렬히 추종하는 마니아층이 두텁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게다가 소재와 장르의 힘보다는, 가수 등의 잘 나간다는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해 단순히 그 스타의 힘만을 믿고 안이하게 연출한 영화들도 한국영화의 거품화에 단단히 일조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앞다투어 스크린쿼터의 폐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일부 영화인들의 승부근성과 도전의식이 결여된 안이한 연출은 결국 그들이 스크린쿼터를 방패막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발전의 걸음마 단계인 한국영화의 현재 위치를 감안하면 스크린쿼터는 아직 필요한 제도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영화인들의 간절한 호소는 '방패막'이라는 비난 속에서 일반 대중들이나 네티즌에게는 호소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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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드 오브 데드>의 한 장면, 조지 로메로는 올해 이 영화를 통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 유니버셜 /필진네트워크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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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의 장르화, 그것만이 살 길이다관객들이 접하게 되는 광고에 비해 허약한 각본과 설정의 문제, 일부 배급사의 지나친 독과점 등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영화의 진정한 문제점은 장르영화의 부재로 인해 다양한 취향의 마니아들의 구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는 확실히 기발해졌다. 하지만 이것을 장르로 연결시키려는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독특한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관객들의 의식 부족도 여기에 한몫한다. 어디 가서 스플래터나 슬래셔 장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사실 쉽지만은 않다. 결국 마니아 문화가 영화 장르에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인 것이다.결국 영화인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세는 흥행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무서울 정도로 폭넓은 지식을 가진 마니아층 관객들을 위한 꾸준한 도전의식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도 좋지만, 단순히 블록버스터가 여러편 제작된다고 한국영화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작더라도 전문성이 돋보이는 강한 영화들이나 장르에 대한 꾸준한 도전과 애정이 서린 영화들이 한국영화 발전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미국의 테크노 스릴러 장르가 정상의 위치에 서게 된 것도, 작가들이 소재에 관해서는 전문가에 가까운 지식 수준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기 때문이다. '파격이 줄었다'와 같은 비판과 많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김기덕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에게 꾸준히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는 적어도 자신이 추구하는 주제의식은 일관되게 연출함으로써,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확립하는 것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 세계 확립은 이런 작가주의 영화 감독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 관객들은 이제 한편의 오락 영화를 보더라도 보다 전문적인 수준이 돋보이는 '장르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할리우드의 광풍 속에서 한국 영화가 버틸 수 있는 길은 결국 하나 뿐이다. 영화인들의 보다 넓은 시야가 '소재의 장르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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