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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10명이 기대작 6편 골랐다
‘괴물’ 8표 압도적인 가운데 ‘한반도’ ‘오래된 정원’ 4표씩
‘다세포 소녀’ ‘사생결단’ ‘음란서생’ 도 3표씩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 않아도 충무로 ‘영화 공장’은 2006년 벽두의 한파를 녹이면서 힘차게 움직인다. 2006년 충무로는 한국영화계의 허리인 중견 감독들의 부지런한 창작열로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새 영화를 내놨던 강우석, 박찬욱, 임상수, 이준익 감독 등이 벌써부터 새 작품을 촬영 중이거나 촬영을 준비하고 있으며 장진, 김대승, 류승완 감독 등 젊은 감독들 역시 지난해의 성과를 뒤로 한 채 새 영화의 준비와 완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여되는 2006년의 대표적인 대작영화들로 현재 촬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반면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이 봄부터 촬영에 들어가며 홍상수 감독과 이창동 감독 역시 올해 크랭크인을 목표로 새 영화의 모양새를 다듬어가고 있어 예술영화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올해도 다양한 영화들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는 충무로 기상도에서 ‘좋은 느낌’이 감지되는 기대작들을 꼽았다. 김형준 한맥영화 대표, 심보경 엠케이픽처스 이사,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이승재 엘제이필름 대표, 이유진 ‘집’ 대표, 이준익 시네월드 대표, 장진 필름있수다 대표, 차승재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 대표, 최용배 청어람 대표, 황우현 튜브픽처스 대표 등 바쁘게 활동중인 제작자 10명(가다다순)으로부터 올해의 기대작 3편씩을 추천받았다. 캐스팅이 완료된 영화 가운데서 골랐으며 자기가 제작하는 영화는 추천작에서 빼도록 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8표로 압도적인 관심도를 보였고,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이 4표를,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와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이 각각 3표를 얻었다.
이 가운데 <다세포 소녀>와 <음란서생>, <괴물>은 촬영이 마무리됐고, <사생결단>과 <한반도>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래된 정원>은 1월5일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과의 사투를 그리는 <괴물>이나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다세포 소녀>는 각각 에스에프, 뮤지컬이라는 한국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장르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사생결단>과 <음란서생>은 2005년부터 충무로의 큰 줄기가 된 ‘남성버디영화’와 사극의 양식적 세련미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보여줄 기대작으로 주목받는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에 닥치는 일본의 침략 위협을 그리는 <한반도>는 <태극기 휘날리며> <태풍>등 주요 대작들이 소재로 끌어왔던 ‘민족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스펙터클 아닌 가족영화”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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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제작비 가운데 반에 육박하는 40억원이 투여되는 괴물 만들기가 영화 <괴물>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서울 시민의 반 이상에 일상으로 드리워진 한강의 존재다. “백두산 천지도 아니고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게 촬영의 관건”이었다는 그는 “뉴질랜드의 평범한 평원이 <반지의 제왕>에서 독특한 분위기의 중간계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무심히 흐르는 한강에 이런 풍경이 있었나 싶은 느낌의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괴물>은 분명 괴수영화이면서도 에스에프 등의 장르에 묶이기 힘든 영화이기도 하다. 괴물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육중하게 화면의 한편에 자리잡고 있지만 “공권력에 외면받으며 외롭게 싸우는 한 가족”이 다른 한편을 차지하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장르의 골격 안에 한국사회의 동시대성을 집어넣겠다는 의도는 <살인의 추억>의 맥을 잇는다. 그러나 감독은 “장르나 메시지를 떠나서 무엇보다 한 가족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정체불명의 적에 대항해 힘겹고 고달픈 여정을 달려가는 가족영화”라는 데 방점을 찍는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처럼 고립된 한 가족이 등장하며 소란스럽지 않고 사실적인 공포감을 전달하는 데 연출의 무게추를 두고 있다고. 김은형 기자, 사진 청어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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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운동속에 핀 ‘애절한 사랑’ 오래된 정원(임상수 감독·엠비씨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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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화 원작 ‘19금 순정 로망스’ <다세포 소녀>(감독 이재용, 제작 ㈜영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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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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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재용 감독이 “그 동안 했던 영화들과는 다른, 덜 진지한 영화를 해보고 싶다”며 출사표를 던진 ‘19금(禁) 순정 로망스’ 영화.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한 내용과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채정택(필명 B급 달궁)의 동명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감독 스스로 “감독과 도무지 매칭이 안 되는 영화라, 영화 관계자들이 어떤 영화가 나오게 될지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 할 정도로 ‘뚜껑이 열리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쾌락의 명문인 ‘무쓸모 고등학교’의 별종 학생들, 원조교제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와 교내 유일한 숫총각이자 왕따인 ‘외눈박이’(이켠)를 양대 축으로 하는 부적절한(?) 두 삼각 로맨스와 가식 없는 성담론을 담았다. 김옥빈, 이켠, 박진우, 김별 등 신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며, “미숙하기도 했지만 의욕들이 넘쳐 즐거웠다”는 게 감독의 촬영 후기다. 순제작비는 32억원으로, 지난해 12월24일 촬영을 마친 뒤 현재 편집중이다. 올 4월 개봉 예정. 만화 보듯 긴장 풀고 보면 좋을듯 감독의 말=“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과장되고 상징적인 것들이 많은 영화다. 만화의 주요 캐릭터들과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을 빌어왔고, 단편적인 에피소드 위주였던 만화에 극적 구성을 위해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무쓸모 고교 아이들의 이야기도 재밌지만,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어른들도 만만치 않게 개성있는 역할들이라 그걸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만화를 보듯 긴장을 풀고 보면 좋을 듯하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대부가 ‘야설가’ 로 변모한 까닭은 <음란서생>(김대우 감독·영화사 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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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스캔들> <반칙왕> <정사>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출신 김대우의 감독 데뷔작. 장르는 유쾌한 음란 사극쯤. 조선시대 우직한 사대부 윤서(한석규)가 어명 받든 사건을 처리하다가 우연히 음란 소설을 접하게 되는데…. 도대체 사사로운 욕심, 욕망이란 게 없던 그가 교성까지 질러가며 ‘까진’ 글을 쓰는 희대의 야설(야한 소설)가로 변모하게 된 사연은 뭘까. 음화를 맡은 의금부 광헌(이범수)과 함께 그들이 ‘음란한’ 행복을 위해 명예, 목숨까지 내건 이유는 또 뭘까. 무엇보다 기발한 소재가 빛나는 시나리오를 김 감독이 직접 쓰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4년을 품들였다. 이전 작품들이 행복을 선택한 순간을 돋을새김했다면, <음란서생>은 김 감독 말마따나 “행복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키려는 책임”을 줌인한 것.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 모두 사극이 처음이다. 의상만 200여벌로 대략 3.6톤. 고혹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스캔들>을 압도한다’고. 순제작비 50억원. 1월말 개봉 예정. 데뷔작이라 뭐가 힘든지도 모르겠다 감독의 말=“데뷔작이라 뭐가 힘든 건지 비교할 대상도 없다(웃음). 다만 의상, 분장, 공간처럼 준비할 게 너무 많아 촬영 과정이 빠듯하고 힘들었다. 추천 장면을 꼽으라면 궁중 정자에서 윤서와 여주인공 정빈이 처음 만나는 대목. 사소하고 우연한,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다. 악센트를 줘서 찍었는데 그런 행복한 느낌, 전해지면 좋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부산 뒷골목…‘마악’ 얽힌 남자들 세계 <사생결단>(최호 감독·엠케이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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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깡패와 구분되지 않는 악질 형사 도 경장(황정민)이 마약계 거물을 잡기 위해 상도(류승범)를 이용한다. 마약 중간상 상도는 도 경장 때문에 한 차례 옥살이를 치렀는데, 그 역시 다시 마약계 거물이 되기 위해 비열한 형사 끄나풀이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삶이란 게 원래 타고난 계급선에서 최대한 서로를 뜯고, 뜯기는 것. <바이준> <후아유>를 만들었던 최호 감독의 작품이란 사실, 낯설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주먹 액션이기 이전에 ‘아이엠에프 시대’와 마약 뒷거래가 횡행하는 부산의 음울함을 세공한 감정 액션이라고. 최 감독이 2년여 동안 ‘초량동 텍사스촌’ 등 부산을 속속 헤집고 다니며 시나리오를 썼을 만큼,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부산. 현지 올 로케이션인데 그가운데 80%가 실제 장소에서 촬영됐다. 드라마가 강한 흥행 영화를 내놓았던 제작사 엠케이픽쳐스(강제규필름+명필름)의 첫 누아르 영화인 셈이다. 순제작비 40억원 가량. 4월 개봉 예정. 황정민·류승범의 200%변신 기대하라 감독의 말=“우연히 부산 쪽 마약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참 무섭고 지독한 세계더라. 우리네 삶과 닮았고, 이런 저런 연막으로 흐리멍텅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여기선 명확히 드러나는 게 매력적이었다. ‘센 케릭터, 그만큼 센 드라마, 그만큼 센 비쥬얼’이랄까. 창작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혹한의 바닷바람 이겨내며 찍고 있다. 황정민, 류승범의 200% 새로운 변신을 기대해도 좋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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