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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8 17:27 수정 : 2006.02.09 17:46

상실감 짙게 드리운 모던록


‘델리스파이스’ 음악 밑자락엔 상실감이 흐른다. 때론 자조적이고 냉소적으로 내면 세계를 담는다. 이들의 모던록은 세상을 향해 분노나 희망을 쏟아놓는 통로이기보다 차갑도록 자아를 관찰해 표현하는 도구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넋두리로 들리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힘은 없지만 적어도 쉽게 휘말려들지는 않겠다’는 자아와 세상 사이 긴장감이 공격적이지 않되 두텁게 쌓아올린 소리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결성과 성장 과정은 이런 감수성과 맥이 닿아있다. 1995년 산업 논리에서 한참 물러 선 피시통신 동우회 밴드로 시작한 이들은 때마침 싹 틔우던 라이브클럽에서부터 이름을 얻었다. ‘크라잉넛’, ‘언니네이발관’ 등 인디밴드들이 개성 넘치는 음악에 개인의 이야기를 실어나르던 때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델리스파이스’는 마니아층을 넓혀가며 이른바 ‘인디’도 대중과 소통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올해로 결성 11년째를 맞은 ‘델리스파이스’는 최근 나온 여섯 번째 앨범 <봄봄>에서 애써 따뜻함에 대해 말하려 한다. 첫곡 ‘시아누크빌’의 뿅뿅거리는 신시사이저와 찰랑거리는 기타는 이런 바람을 전한다. 하지만 뒤틀린 전자음을 쏟아내는 ‘나의 왼발’부터 앨범 전체적으로 상실감이 짙다.

“따뜻해지려해도 저희가 벗어던지지 못하는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윗세대는 직장이건 뭐건 이루면 쭉 가는 게 있었죠. 하지만 제 또래에게는 무엇이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어요.”(윤준호·35) “옳다고 믿었던 게 허물어지거나,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르는 경험 같은 게 공감대를 이루는 세대라고 할까요.”(김민규·34)) “따지고 보면 1집에 담은 ‘차우차우’에도 굳이 세상을 뒤집고 싶지도 않고 너무 투덜거리지도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나에게 와달라는 것도 떠나버리라는 것도 아닌, 그저 ‘너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상태를 노래하잖아요.”(최재혁·31)

이들은 상징과 은유가 넘실대는 노랫말을 이제까지 들려줬던 음악의 커다란 테두리 안에 풀어놨다. 하지만 이번엔 멤버 각자의 색깔이 살아있는 곡들이 빼곡해 ‘델리스파이스’ 음악의 확장 또한 보여준다. 그동안 김민규는 ‘스위트피’라는 이름으로 어쿠스틱하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선보였다. 이 흐름이 이번 앨범에서 김민규가 만든 ‘바다에 던져버린 이름들’ 같은 담백한 곡에 남아있다. 최재혁과 윤준호는 고경천(키보드)과 함께 밴드 ‘오메가3’를 만들고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록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건반 악기의 화려함과 겹겹이 쌓아올린 소리의 폭발은 이번엔 ‘네이팜처럼 차가웁게’ 등에 감돈다.

이번 앨범이 멤버의 개성을 살려 온건한 방식으로 새로운 소리를 들려준다면 2000년에 나온 세 번째 앨범 <슬프지만 진실>에서는 다소 과격한 변신 또는 확장이 도드라진다. ‘이어폰 세상’ 같은 곡에선 국악과 힙합, 일렉트로니카의 특징까지 들어있다. “그땐 될 대로 되라 심정이었어요. 잃을 게 없으니까 두렵지도 않았죠. 음악계에 대한 실망이 컸어요. 뭔가 확 뒤집히길 바랐는데 3집 낼 때쯤엔 활발히 활동했던 팀들도 하나씩 사라져갔죠.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곡들을 보면 예전보다 퇴보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바라는 게 이건 아닌데…’ 그런 느낌이 뼈 저렸죠. 지금은 초연해졌어요. 느낌이 다른 상실감인 셈이죠.”(윤준호)

이들은 이번 앨범 속지 사진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찍었다. 흐르는 시간과 거대한 자연이 문명의 자취가 남은 텅 빈 공간을 관조하는 곳에서 ‘델리스파이스’는 이런 노래를 띄운다. “하늘엔 구름도 새도 없네. 모두가 떠나가 버린 회색 하늘의 오후에… 쓰러진 나무에 꽃을 피울 수 있나?”(‘어느 오후’)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문라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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