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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2 18:09 수정 : 2006.02.23 17:38

싸이월드 레씽뮤지컬 동호회 회원들이 10여평짜리 허름한 지하실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에게 뮤지컬은 ‘제2의 인생’이다.

[100℃르포] 저녁 7시…빨래방 건물…10평 지하실 “왜 이렇게 안맞아” 그래도 “신나는걸”


뮤지컬 동호회가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시간이 그렇게 많지?’ 뮤지컬은 춤과 노래, 연기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하기 때문에 프로 배우들도 몇 달씩 연습을 해야 한다는데, 하물며 100% 아마추어들이라니….

회원 4300명 중 고르고 골라 14명

싸이월드 레씽뮤지컬 동호회(letsingmusical.cyworld.com)의 두번째 정기공연 <뮤지컬 게임> 연습장을 찾은 것은 지난 15일 저녁 7시.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앞 ‘봉 빨래방’ 건물, 10여평짜리 지하실이었다. 난방도 안되는 허름한 공간은 이내 아마추어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왜 이렇게 안 맞아. 미치겠다, 정말.”

공연이 사흘밖에 안 남았는데도 대사를 까먹기 일쑤다. 동작도 어색하다. 연출을 맡은 한유진(34·뮤지컬 배우)씨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한씨는 동호회에서 유일한 프로인 셈이지만, 그나마 연출은 초짜나 다름없다. 그러나 발음이나 동작, 타이밍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혹시 기분이 상할까 “미안한데요”를 버릇처럼 연발하면서.

2부 순서인 뮤지컬 <더 플레이> 1막 ‘떡볶이’ 부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단체로 마법에 걸려 밤새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가운데, 숨겨진 사연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대목이다. 구경하는 다른 회원들은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이 없다. 이 맛에 고생을 사서 하나?

“엊그제까지 전혀 안 맞았는데, 갑자기 탁탁 맞을 때 전율이 느껴진다”는 대학생 정성(24)씨, “웃고 즐기다보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는 김영희(33·그래픽 디자이너)씨를 비롯해, 성격을 바꿨다는 사람도 있다. “제가 원래 수줍어하고 말이 없었는데, 굉장히 밝아졌대요. 용기가 대단하다고 사람들이 부러워해요. 연습을 마치고 집(용인 수지)에 가면 새벽 1시쯤 되지만,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구현희·26·한양대 행정조교)


“하루가 100시간이었으면…”

이번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는 모두 14명. 4300여명의 회원 가운데 3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오디션을 볼 기회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호회 내 기초발성반(12명)을 거친 사람이어야 한다. 오디션을 보려고 멀리 대구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싸이월드에만 비슷한 동호회가 수백개나 있는데, 직접 공연을 하는 것은 ‘레씽’이 유일하다.

회원들은 대부분 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는’ 뮤지컬 광들이거나, 왕년의 배우 지망생들이다. 김영희씨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뮤지컬 배우를 꿈꿨는데, 부모님 반대로 못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배우 안 하길 잘한 것 같다”고 웃는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배우가 꿈이긴 했지만, 왠지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아마추어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잖아요.”(임우종·32·컴퓨터 프로그래머)

반주도 대본도 비용도 ‘자급자족’

저녁 9시가 다 되어 연습실에 도착한 임씨는 미안한 듯 머쓱한 표정으로 연습 대열에 끼어든다. 그는 집 화장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 이웃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나마 노래는 출퇴근 시간에 많이 듣지만, 춤은 혼자 연습하기 힘들어 “그냥 대충 묻어서 가고 있다.” 애초부터 시간이 많거나,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걸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접 하는 것과 보는 것, 어느 쪽이 더 재미있을까? 정답은 ‘직접 하기 때문에 보는 것도 더 재미있다’이다. 정성씨는 “공연을 볼 때 내가 무대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 실감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갖고 있는 회원들은 스태프의 저수지 같은 구실을 한다. 음악을 전공한 유지혜(21)씨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방송작가 이한나(32)씨는 대본과 공연 프로그램 구성을, 컴퓨터 재간꾼들은 녹음 문제를 해결해 줬다. 이들은 한달에 6만원의 개런티를 ‘받는 게’ 아니라, ‘내면서’ 공연에 참가한다. 이 돈으로 소품이나 분장 등 꼭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예정이다. 의상도 자기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이제 연습할 시간이 사흘밖에 안 남았다니, 벌써 아쉬워요. 공연이 끝나더라도 연습시간이 다가오면 몸이 근질근질할 거에요.”(이혜민·21·대학생) “20일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가 100시간이었으면…. 더 잘하고 싶어서요.”(임우종)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내 삶에 반영하는 이들의 표정은 봄처럼 환했다. 행복해 보였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공연이 끝나고 난뒤

지난 18~19일 돈암동 ‘작은 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계단과 입구에 보조석을 놓을 정도로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회원들 서로의 애정과 자부심은 커졌다. “공연 중에도 말도 못할 정도로 실수가 많았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얼굴 빨개지고 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거 있죠.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 많았어요.”(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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