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 블루스, 사랑했어요”
한영애, 이은미, 정경화, 김현식…. 이 걸출한 보컬들의 이력엔 모두 ‘신촌 블루스’가 있다. 1986년 이정선, 이광조, 엄인호 등이 중심이 돼 서울 신촌의 ‘레드제플린’이란 카페에서 시작한 이 밴드는 ‘골목길’, ‘루씰’ 등 한국인의 감수성으로 걸려낸 블루스 명곡을 남겼다. ‘대중음악의 뿌리’라는 찬사가 무색하도록 한국에서 블루스의 대중적 기반은 얄팍하다. 이 명맥을 이어온 ‘신촌 블루스’가 다음달 1~12일 서울 정동 팝콘하우스에서 20주년 기념콘서트를 벌인다. 공연 레퍼토리 김현식 노래로“음악 공부하러 미국 갑니다” ‘신촌 블루스’는 요즘 밴드 개념에 빗대보면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경계가 애매하도록 여러 음악인들이 들락날락하며 즉흥연주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터줏대감인 엄인호(54)는 당시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심의가 심해서 불만이 많았어요. 아는 형 카페에 뭉쳐 별 생각 없이 금요일 저녁마다 하고 싶은 공연을 해본 거죠. 그런데 관객이 점점 많아 졌어요. 그래서 소극장으로 장소를 옮기고 이름도 지었어요.” 당시 영화인, 연극인, 음악인 등이 모여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 일쑤였던 신촌이란 공간이 그랬듯이 ‘신촌 블루스’도 문화적 해방구였던 셈이다.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음악인들이 모이고 흩어졌던 그룹이니 초기 ‘신촌 블루스’의 정체성을 한 가지로 요약하는 건 무모하다. ‘신촌 블루스’ 음악을 지고 가는 두 주축인 이정선과 엄인호의 스타일만 해도 확연히 달랐다. “이정선 선배가 학구적이었다면 전 멋대로였어요. 그래도 상당히 잘 어울렸어요. 제가 공연에서 돌출 연주를 하면 이 선배가 황당해 하며 맞춰주던 게 생각나요.” 명반으로 꼽히는 이들의 ‘신촌 블루스’의 두 번째 앨범(1989년)에는 정서용의 낭랑한 목소리로 풀어낸 ‘빗속에 서 있는 여자’, 김현식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바람인가/빗속에서’ 등이 실려 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정선은 ‘신촌 블루스’를 탈퇴하고 그 후엔 엄인호 중심의 프로젝트 밴드로서 성격이 짙어진다. 비록 ‘신촌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앨범이 나온 것은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이들이 남긴 곡들은 여러 가수들의 목소리를 타고 생명력을 유지했다. ‘신촌 블루스’의 음악에 대한 볼멘 소리도 물론 있다. 정통 블루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요를 만든 거예요. 정통 블루스를 했다면 대중에게 그만큼 다가가기 어려웠을 거예요. 우리가 곡을 쓸 줄 아는데 굳이 외국곡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가 있나요?” 이번 공연에는 ‘신촌 블루스’를 거쳐간 김목경, 이정선, 정경화, 이광조 등 뿐만 아니라 전인권, ‘봄여름가을겨울’, 한대수 등이 초대 손님으로 나온다. 엄인호는 “‘신촌 블루스’의 초기곡부터 아우르되 김현식의 노래를 중심으로 레퍼토리 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랑 술 마시고 신촌 기차역에서 자던 추억이 남아 있어요. 김현식은 천재였죠. 어떤 곡을 줘도 그 안에서 금방 다른 걸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어요.” 엄인호는 이번 공연이 끝나면 미국으로 갈 계획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너무 상업적으로만 흘러가 재미가 없어요. 설 무대도 별로 없고요. 마지막으로 음악을 공부하며 자유롭게 연주도 하고 싶어요.” 1588-7890.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