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백해서 힘있는 ‘기계음시대 여백’
한국에서 베이스 연주자로 첫손에 꼽히는 송홍섭(52)이 <미닝 오브 라이프(삶의 의미) 1>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14년 만에 내놓은 앨범은 단순하다. 고만고만한 낱말을 되뇌는데 그러다보면 노랫말이다. 머리 까딱까딱하며 발장단 좀 맞추다보면 멜로디다. 분위기는 1970~80년대 신중현이나 ‘산울림’이 선사했던 친구 같은 록을 닮았다. 사운드 과잉 시대에 담백함은 중독성을 발휘한다. 이 헐거운 음악은 듣는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여유 안에서 흥겹게 노닐게 한다. 16살 ‘떠돌이 악사’ 에서 최고 베이스 연주자로
이번 앨범은 ‘한국적’ 록 보태기보다 빼낸 자리에서 여운이 자란다. 친근한 노랫말은 곱씹을수록 뜻을 새끼친다. 찰랑거리는 리듬을 타고 “바보 나는 바보 바보… 그대만을 사랑했어”라고 읊조리는 ‘바보’만 해도 골똘히 생각하면 간단하지 않다. “고정관념을 이야기한 거예요. 사회에서 배우는 규칙들에 한번쯤 의문을 품어보라고 살짝 권하고 싶어요. ‘이게 진짜 나한테 맞는 건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살면 한번이라도 자유로움을 맛 보거든요.” 사랑 노래로 듣고 싶다면 그것도 문제 없다. 한 곡 안에 여러 개가 숨어 있듯 리듬은 갑작스레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악기들은 능청스레 재주를 부린다. “고정관념은 정확한 반응을 왜곡할 때가 있죠.” 그래서 그는 빽빽한 복잡함에도 고개를 젓는다. “키보드를 싫어해요. 한 음을 치면 여러 소리가 나거든요. 저는 단세포 인간이라 그 모두에 반응하기 버거워요.” 이번 앨범이 기타, 베이스, 드럼 중심인 까닭이다. 전체적으로 옛 엘피판처럼 소리가 뭉글뭉글 번져나가는데 ‘핑크 플로이드’ 등의 앨범 마무리 작업을 한 더그 삭스의 솜씨다. “디지털 음악은 중음역대에 오류가 있어요. 한 시간 이상 들으면 골치가 아프죠.” 그는 까다롭되 단순한 사람인 듯하다. 동력은 오롯이 호기심이다. 본격적인 음악 이력은 경기도 가평에서 소 몰다가 16살에 가출해 ‘떠돌이 악사’부터 시작했다. 그의 베이스 주법은 ‘정상’이 아니다. “전에 색소폰을 불었는데 그걸 적용해서 혼자 터득한 거예요. 그러니까 불듯이 치죠.” 1970~80년대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유엔미 블루’, 신윤철, ‘삐삐밴드’, 김현식,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아이엠에프 뒤 운영하던 음반 기획사가 폭삭 주저앉았는데 그가 택한 건 연주가 아니라 이른바 막노동이었다. 거창한 건 아니다. “저는 생존하려고 음악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요. 그게 안 돼요. 호기심이 안 생기면 악기를 잡아도 감흥이 없어요. 본능적으로 거부해요.” 한번 불 붙으면 먹지도 자지도 않고 내달려 심근경색, 급성 췌장염 따위로 죽을 고비도 넘겼다. 호기심은 머리카락 희끗희끗해진 그에게 소년 같은 얼굴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재미있는 꿈을 만든 그대는 너무 사랑스러워, 끝에서 끝을 찾는 내가 어린아이처럼 위험하긴 하지만~”(‘나의 호기심은 못 말려’)이라고 노래한다. 이번 앨범에는 전체적으로 1970년대 중후반 대마초 파동 이전에 본격적으로 꽃 피던 이른바 ‘한국적’ 록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안에서 숙성되지 않은 직수입된 것들이 싫어요. 여기 오래 살았으니까 그 영향을 받아 솔직하게 표현한 거예요.” ‘길’에는 <도덕경>에서 따온 구절을 황세희가 판소리 느낌 나는 랩으로 풀었다. “굽어져야 곧아지고 곧아져야 굽어진다~.” 그가 앞으로 벌일 작업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가는 때가 되면 안에 있는 걸 다 배출하고 다른 걸 쌓아야 해요. 이제까지 그러지 못했죠. 살아가면서 생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담아 연작으로 내놓고 싶어요. 20대 젊은이들과 만든 그룹 ‘피닉스’의 공연도 이어가고요.” 그는 “도시에 살면 소리에 내성이 생기니까 모두 더 자극적인 걸 만들려고 한다”며 “더 큰 소리를 내려고 경쟁할 뿐 음악의 힘은 빠져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서울음반 제공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