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1 20:28
수정 : 2006.06.11 20:28
무대는 시종일관 어둡다. 배우들은 낮게 읊조린다.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대사를.
극단76단의 30주년 기념 공연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검둥이와 개들>. ‘제2의 새뮤얼 베케트’로 불리는 프랑스의 요절한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출세작을, 기국서와 박근형의 맥을 잇는 극단76단 출신의 차세대 연출가 김낙형(36·극단 죽죽 대표)이 무대에 올렸다.
배경은 서아프리카의 건설 공사장. 어느날 공사장에 신비스런 흑인 알부리(성홍일)가 나타난다. 어린 흑인 노동자의 시체를 찾으러 온 것이다. 그러나 공사장 소장 오른(윤제문)은 알부리의 요구를 못들은 체 하며 돈으로 대충 때우려 한다. 알부리를 죽이려던 칼(윤상화)은 오히려 자신을 죽이고 만다. 오른의 젊은 아내 레온(김성미)은 아프리카에 남고 싶어하지만 결국 아프리카를 떠난다. 현대인을 표상하는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소통에 실패한다.
76단은 2004년 <로베르토 주코>(기국서 연출), 2005년 <서쪽부두>(박근형 연출)에 이어 세 번째로 콜테스의 작품을 올린다. “무정부주의적이며 반문명적인 세계관이 극단 76단의 정서와 함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콜테스의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난해하다. 극단76단은 “우리는 준비되고, 생각하는 관객만이 오길 바란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객석에 앉아있는 2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머리를 쓰다보면 가슴이 젖는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고. 레프도진의 <형제자매들> 이후 ‘느림의 미학’을 다시 만끽할 기회다. 18일까지 대학로 블랙박스씨어터. (02)3673-5580.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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