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25 18:05 수정 : 2006.06.25 18:17

오른쪽 맨 위 왼쪽부터 산울림의 김창익, 김창완, 김창훈. 사진 라이브플러스 제공·<한겨레> 자료사진

한글이 록에 적합지 않다고?
비틀스와 동시대인이 부럽다고?
‘산울림’ 있는 한 그건 착각

‘영원한 청춘’, 그룹 ‘산울림’이 결성 30돌을 맞았다. 이들은 다음달 5일과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 공연을 벌인다. 한국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산울림을 되돌아본다는 취지에서 후배 밴드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이선규씨의 글을 싣는다. ‘자우림’은 98년 산울림의 헌정음반에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실은 바 있다.

2006년,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김창완씨를 모르는 이는 드물다. 탤런트, 광고 스타, 영화배우, 아침 에프엠 라디오의 디제이로 ‘잘나가는 중년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그가 3인조 록 밴드의 보컬, 기타리스트임을 먼저 떠올리는 일이 쉽지 않게 되어 버렸나 보다.

1980년대, 치렁치렁 긴 머리와 근육, 달라붙는 바지, 무한 고음 보컬을 록음악의 미덕으로 삼던 나에게, 뿔테 안경과 짧은 머리는 록 밴드의 범주에 허용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아니 벌써’는 내 관심 밖의 그저 그런 가요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이날이면 텔레비전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고개를 살랑거리며 앙증맞게 부르던 ‘개구쟁이’를 들었고, 유치원 선생님들이 공식 율동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산 할아버지’를 들었다.

1990년대,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록 뮤지션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는 짧아졌고, 바지통도 넓어졌다. 세계의 록 음악계는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마초맨’의 외침에서 수줍은 말라깽이의 푸념으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산울림’의 십수년 전 음악들이 록 음악으로서 어색하지 않게 들렸다. 아니, 당시의 그 어떤 음악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렸다. 앨범 재킷 속의 사진은 사라진 문화체육관일지언정, 그 안의 곡들은 누구보다도 모던하게 연주되고 불리어지고 있었다.

왜 동요로만 알고 있던 ‘개구쟁이’, ‘산 할아버지’가 징징거리는 퍼즈 기타 위에서 노래되었음을, 블루스풍의 기타 전주로 시작했었음을, 몽롱하고 긴 기타 솔로가 있었음을 전혀 몰랐을까? 홍대 주변의 라이브 클럽에 가면 당장이라도 마주칠 것만 같은 20대 총각들은 40대가 되어서야 나의 로큰롤 스타가 되었다.

이로써 예전의 오해들이 더없이 무안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비틀스와 한 시대를 살던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흔히들 산울림의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 가장 흔히 보았던 단어는 ‘충격’, ‘파격’, 이런 단어들이다. 하지만 산울림의 노랫말만큼은 ‘이거 가사 맞아?’ 싶을 만큼 편안한 글로 이루어져 있다. 과하거나 지나친 표현은 없다. 그렇다고 곱게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뮤지션들끼리 가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흔히들 “한글은 록 음악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영어처럼 매끄럽게 노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산울림 1집에 수록되어 있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는 그러한 불만투성이의 뮤지션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꼭 그렇진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이 한 줄이면 충분하다.

1997년, 20년 된 밴드 산울림이 13집을 발매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라는 펑크음악이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산울림의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공연도 계속되었고, 여느 록 밴드처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30년이란다. 최근 콘서트에서의 산울림은 여느 신인 밴드보다 더 활기찬 에너지를 보여 주었다. 신곡도 들어 볼 수 있어 새 앨범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탤런트 김창완, 디제이 김창완씨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좋은 이야기를 선물해주고 있다. 그리고, 나는 로큰롤 스타 산울림의 새 노래를 기다리고 있다. 산울림은 과거의 영광도, 전설도 아니다.

이선규/ ‘자우림’ 기타리스트


솔직한 가사 독창적 선율 슬픔은 떼고요
김창완이 말하는 산울림

그룹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씨를 지난 15일 에스비에스 건물 옆 작은 공원에서 만났다. 김씨는 더운 날씨에도 풍성한 오토바이 운전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30주년 기념 공연의 소회는?

= 초대받은 기분이다. 팬들의 감회가 더 벅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팬들의 기대에 비하면 직무유기를 해왔다. 30년 동안 우리를 아껴온 팬들은 우리가 가요사에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줬다. 음악 생활을 돌아보면, 산울림은 상당한 독창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보편적인 가요의 정서를 정확히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어떻게 꾸밀 계획인가?

=아무래도 데뷔작인 ‘아니 벌써’부터 히트곡 중심으로 노래하지 않겠나. 이전보다 좀더 역동적인 공연이 될 듯하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넥스트와 자우림 같은 친구들이 함께할 것이다.

-후배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98년에는 헌정음반도 받았는데.

=헌정음반에는 후배들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 같다. 우리가 험한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한다. 산울림이 잘나가는 밴드로서 그 당시의 경향만을 좇았다면 헌정음반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산울림 음악의 특색을 말한다면?

=많은 가요들이 어떤 감정을 중심으로 거기에 선율과 가사를 입히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음악연’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보편성을 간직한,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가사를 만들고 곡을 쓰려고 했다. ‘어머니와 고등어’같이, 가장 일상적인 장면들을 포착하려고 했다.

-올해 14집 음반을 발매할 계획도 있었다던데?

=새로운 음악 시장이 산울림의 음악을 원하는지, 어떤 시장에 어떻게 내야 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새 음반을 위해 노래도 만들어 놓았지만, 솔직히 음반을 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음반은 소장가치가 있는, 추억을 담는 도구로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오프라인 시장이 괴멸된 상황이다. 음원만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뼛속까지 비관주의자’라는 말을 했는데, 의외였다.

=작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 삶이 내부적으로 상당히 연관되어서, 오늘이 누적되어서 내일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삶이 불연속적이더라. 그러면서 작년에 ‘50년의 우(憂)’를 떨쳐냈다.

-그런 태도의 변화가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나?

=그렇다. 과거에 산울림은 ‘슬픔’을 노래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노래의 정조는 ‘조이’다. 이번 공연에서 새 노래 ‘나 원 참’과 ‘작업’을 올린다. 기쁨을 가진 노래들이다. ‘나 원 참’은 직장인의 출퇴근길을 그린 노래고, ‘작업’은 말 그대로 남녀간의 실랑이에 관한 노래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