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25 18:21
수정 : 2006.06.25 18:22
거장 지휘장들과 소리 담금질, 부럽다
일본 교향악단 하면 떠올리게 되는 사운드가 있다. 단정하고 깨끗하고 절제된 그들만의 사운드. 여섯번 째 한국을 방문한 엔에이치케이(NHK) 교향악단의 공연(6월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기대했던 이들의 사운드를 만날 수 있었다. 1부는 그들의 장기 무대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친 바 있는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지휘한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은 자국 작곡가 도루 타케미츠의 ‘3개 영화 음악’으로 산뜻하게 출발해, 타케미츠가 현재의 일본 영화음악에 끼친 영향을 엿보게 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2번에서는 오른 손가락 마비에서 회복한 노장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가 깨끗하고 과장없는 자신만의 주법으로 동심의 모차르트를 노래했다. 기억력 감퇴 탓인지 마치 노년의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처럼 악보를 보면서 연주한 것도 이채로웠다.
하지만 아쉬케나지의 지휘와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은 모차르트에서 톱니가 정확히 맞아 들어가지 않는 장면도 노출했다. 2부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는 현과 관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세계 악단에 정평이 나있는 비단결 같은 사운드로 연주해주었는데, 깨끗함과 섬세함에 있어서는 세계 정상이었으나 일본 반찬과 한국 반찬 양념의 차이랄까 감칠맛과 광활한 스케일, 뜨거움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은 앙코르 무대로 브람스 헝가리 무곡 1번과 김희조의 ‘밀양 아리랑’으로 우정의 손을 내밀었다.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의 내한 공연은 우리 악단이 어느 곳을 지향해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 준 무대였다. 1960년대부터 카라얀, 앙세르메를 위시한 세계 최고의 지휘자들을 초청해, 기념비적인 공연을 해온 엔에이치케이는 탄탄하게 짜여진 지휘자 진용을 갖추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을 영입해 좋은 성적을 올린 것처럼 엔에이치케이는 1998년부터 부임한 명예음악감독 샤를르 뒤트아, 이미 상임지휘자를 거친 명예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쉬, 오트마르 주이트너, 그리고 호르스트 슈타인과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에 이르는 거장 지휘자들을 영입, 끊임없이 소리를 담금질 해왔다.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은 세계에서 손꼽는 오케스트라다. 일본 교향악단이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일류와 함께하면서 일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 정상의 지휘자를 통해 음악을 배우고 세계의 흐름과 호흡하고 클래식 팬들을 청중으로 끌어들여 저변을 넓혔다. 이 저변은 일본 프로야구와 한국 프로야구의 차이와도 같은 것이다. 교향악단도 스포츠팀과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 최고의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에는 상임지휘자가 없다. 교향악단의 발전은 정상의 지휘자 영입이 우선 과제임을 엔에이치케이 교향악단 공연은 시사하고 있다. 장일범/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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