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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2 21:05 수정 : 2006.07.02 21:05

고단한 현실은 방 뺐나

“임대아파트-없어 보여도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그나마 감사하지만 살아 보라. 좁은 평수에 개인의 공간이란 없다.”(작가의 말에서)

젊은 극작·연출가 김한길의 〈임대아파트〉(16일까지 연우무대 소극장)에서 ‘대추리에서 있을 법한’ 처절한 진실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의 임대아파트는 사회적 불평등, 양극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아니라 단지 젊기에 거쳐가야 하는 좁은 공간, 아직은 탈출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필요악과 같은 공간이다.

아직도 젊은 연극인의 작품에서 사회적 리얼리티를 기대하느냐고? 사실은 내심 기대를 시작하는 중이다. 입센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연극에선 아직 입센이 낯설므로. 개인이 주저주저 토해놓는 내밀한 속삭임을 통해 사회가 그들을, 혹은 우리를 어떻게 호출하는지 파헤쳐 주는 연극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참으로 부족했으므로. 우리 연극에서 개인과 사회는 아직 통합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 점을 잠시 접어놓는다면 김한길의 이 연극은 재미있다. 그는 작은 무대 안에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모든 관계를 촘촘히 짜 넣는 재주를 지녔다. 오래된 연인, 새로 시작하는 젊고 불타는 연인, 과거의 연인. 배신을 예감하지만 누구도 배신하지 않는 사랑과 우정. 미묘한 코믹 감각으로 구축하는 대사는 관계의 미학과 아이러니, 말장난까지 포함하면서 관객의 입가에 웃음을 붙들어 놓는다. 여기에 룸살롱 이름인 ‘벅시’가 주는 약간의 긴장감까지.

작가가 “개인의 공간이란 없다”고 했던 것처럼 작은 무대 동일한 공간에서 두 집 이야기가 교차한다. 어차피 아파트는 어디나 비슷하니까. 임신 중절이나 죽은 연인과 만남 같은 가장 심각한 장면에서 “싸고 물 좋은 오징어. 꽁치 갈치 …” 하는 생선 트럭 스피커 소리 같은 삶의 소음이 끼어 들고, “바다이야기”(게임), “싸이월드-비밀이야” 같은 일상적 소재가 대화에 중요한 밑천을 제공한다.

아직은 낭만적 멜로드라마와 낭만적 리얼리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전작인 〈슬픔, 혹은〉에서 보였던 극도의 감상성은 걷어냈다. 마치 자기 이야기인 듯 자연스럽게 개성을 토해내는 배우들의 집단주인공적 면모도 연극을 빛내는 중요한 요소다. 30대로 젊다고는 해도 역시 남성 작가라 연극에서 여성들은 온통 남성들의 뒤치다꺼리만 하지만 그래도 이들 모두는 건강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 있다. 이 ‘건강하다’는 것. 그의 연극에서 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꿈을 간직하고 산다. 김한길뿐 아니라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장유정, 〈빨래〉의 추민주 등 요즘 가장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고 있는 젊은 연극인들이 자신과 이웃을 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들의 연극에 휴머니즘의 따뜻함과 유쾌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소꿉장난 아닌가. 이들의 앞 세대가 보여준 냉소주의와 위악도 문제지만 진짜 아플 줄 모르는 순진함도 건강한 것은 아니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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