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9 21:58
수정 : 2006.07.09 21:58
웃기는 무술 집안, 좀더 힘껏 뛰어라!
코믹 마샬 아트 퍼포먼스 <점프>(8월31일까지 제일화재 세실극장)를 보면서 지난해 말 내한해 안산에서 공연했던 호주 공연 <탭덕스>가 떠올랐다. 작품 분위기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언어 연극의 드라마성이 해체되는 이 시대에 가장 고전적인 드라마성을 바로 넌버벌 퍼포먼스가 이어받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을 두 작품이 공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철강노동자들의 삶을 탭댄스에 녹여 남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던 <탭덕스>는 인간 심리 구조를 반영하는 고전적인 드라마 구조, 곧 ‘제시-갈등-급변-대단원’이라는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 관객을 흥분과 이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오는 8월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한 <점프> 역시 동양의 다양한 전통 무술을 코미디에 실어 보여주면서 이 시대 많은 연극들이 포기한 고전적 드라마를 끌어들였다. 희극의 가장 전형적인 두 모티브, 바로 ‘결혼’과 ‘도둑’ 이야기다.
창호지로 된 창문과 미닫이문을 배경으로 일상이 무술인 한 집안. 전통적 삶을 표방했듯 당연히 할아버지로부터 손녀까지 3대가 산다.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하루 낮과 하루 밤의 이야기. 낮에는 사위 후보가 초청되어 무술 대결을 벌이고 밤에는 두 도둑이 들어와 이 가족과 격투를 벌인다. 이 지점에서 재키 챈(성룡)의 영화들이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딸과 사위 후보 사이 연애 이야기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밤의 전투(!). 전형적인 희극 구조 덕분에 이 연극엔 말이 별로 필요 없다.
춤과 노래 대신에 무술의 기교를 지닌 육체의 향연을 통해 이 공연은 관객에게 몸의 해방과 삶의 유머를 느끼게 한다. 예를 들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꼬부랑 할아버지가 불현듯 재주를 넘어 보여준다든가 하는 삶의 의외성 같은 것. 아니면 강건한 몸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몸이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든가.
그런데 유머와 테크닉이라는 이 두 가지 면 모두에서 아쉽게도 이 공연은 몇 %씩 부족하다. 공연의 ‘촌스런’ 면모는 오히려 의도적인 장점으로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이 순간 순간 맞닥뜨리는 무대 위 풍경이 관습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인 결여다. 유머가 삶에 대한 전복적 태도와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이 연극의 발상은 애초에 의도한 ‘일상화한 무술의 대화’ 이외에는 별로 진전되는 것이 없다. 무술도 여러 가지가 있어 그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길만 하건만 구분 없이 ‘테크닉’이라는 면에서만 전시되는 것도 아쉽다. 배우들의 테크닉도 아직 ‘신기’의 수준은 아니다.
서커스, 댄스, 퍼포먼스는 더 이상 싸구려 볼거리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헛헛함을 채워주는 환상의 드라마로서 공연 예술로 들어오고 있다. <점프> 역시 그 길을 찾았다. 관객을 웃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몰입하게 하려면 공연을 그리는 좀더 세밀한 지도가 필요하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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