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5 20:58
수정 : 2006.07.25 20:58
구본창 ‘백자 항아리’ 사진전…‘순백 미’ 대신 흠집·자국 조명
눈부신 순백의 아름다움? 순결한 미학?
사진가 구본창씨의 회색빛 앵글 속에 담긴 백자 항아리들은 이런 수식어를 들이대기에 마땅치 않았다. 닳고 닳은 아가리 둘레에 땟줄처럼 앉은 흠집들, 낙서처럼 직직 긁힌 자국, 금들로 뒤발한 몸체의 표면들…. 마치 험한 세월을 살아온 노파의 자태와도 같다. 검게 암전된 배경 속에 흰 복부만 드러낸 달 항아리에도, 주발과 술잔에도, 물병에도 어김없이 흠이 있다.
서울 소격동 국제 갤러리에 마련된 구씨의 근작전은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파리 기메박물관 등 세계 11곳의 컬렉션에 흩어진 조선의 백자 명품 사진 40여점들로 채워져 있다. 감상의 초점은 흔한 상식대로 명품을 알현하는 쪽이 아니라 옛 시간을 재현하겠다는 작가의 강렬한 욕망이 투영된 백자 표면의 질감과 배경의 분위기에 맞춰져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벽에 쌓인 먼지 등 미세한 사물들의 시간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한편으로는 탈 등의 전통에 심취한 작가의식의 흐름과 부합되는 것으로도 비친다.
작가는 “카메라 조리개의 감도를 크게 낮추고 표면의 한 구석에만 시선을 맞추면서” 이런 질감을 부각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 백자의 윤곽선은 마치 붓질한 그림처럼 배경과 녹아드는 듯한 효과를 연출하면서, 전시장 2층에 걸린 백색 액자틀의 사진들처럼 미니멀한 서구 정물 구도를 연출하는 효과도 낳고 있다. 옛 시간의 숨결 외에 작가는 백자에 대한 모던한 해석까지 뭉뚱그려 채워넣은 셈이다. “15년 전 외국 도예가 옆에 긁힌 상처와 속살을 내보인 채 놓인 백자 사진을 본 뒤부터 작업을 구상했다”는 작가는 숨쉬고 사는 인간처럼 도자기를 응시하려 했다”고 말한다. 30일까지. (02)735-8449.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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