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해온 두 외국 음악인이 말하는 대중음악계
그룹 ‘뜨거운 감자’의 기타 주자 하세가와 요헤이와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달’의 보컬 린다 컬린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보석 같은 존재다. 그저 보기 힘든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주류 일색의 대중음악계에서 이들은 이국적이고 개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우리 대중 음악을 풍요롭게 했다. 이들 중 컬린이 이달 말 약 3년간의 음악활동을 접고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할 말이 많을 법도 하다. 할 말 많기로는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출신 음악인 하세가와도 그에 못지 않다. 초면이라는 두 사람은 만나자 금세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하세가와는 컬린의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 들었고, 컬린은 하세가와의 유창한 한국말을 꽤 이해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친근함이 두 사람의 대화에 맴돌았다.
하세가와=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1995년에 일본에서 ‘신중현과 엽전들’과 ‘산울림’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음악적인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신선하고 창조적이에요. 그래서 97년 무작정 한국으로 와서 활동을 시작했죠. 그리고 지난 7월5일날, 바로 그 산울림 결성 30돌 기념 공연에서 세션으로 참여했어요. 커다란 영광입니다.
컬린=저도 행운이 따랐어요. 저는 원래 음악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여행을 겸해서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왔거든요. 그런데 2003년 가을에 이태원의 바에서 노래하다가 손님으로 와 있던 한대수 선생님을 만났죠. 그 때 그 분이 ‘어이, 아가씨, 우리 음반 만들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2004년 그의 10집 음반 〈상처〉에서 ‘블랙 이즈 더 칼러’ 등을 불렀구요. 그 때 음반을 같이 만들었던 친구들과 마음이 맞아서 2003년 말에 ‘두번째 달’을 결성했습니다.
하세가와=그래도 처음엔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요?
하세가와 요헤이 / 흠모해온 ‘산울림’ 30돌 공연 참여 영광
빼어난 음악인 많은데 무대는 빈곤 60년대 한국 가요 창조성에 충격
컬린=무엇보다 비자 문제가 괴로웠죠. ‘두번째 달’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즐겁게 음악을 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백암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고 나니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찾아왔더군요. 공연 비자가 없이 공연을 해서요. 제 잘못이죠. 소속 회사 잘못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아일랜드로 추방됐었어요.
하세가와=저도 2002년 지금의 소속사를 잡을 때까지 정식 비자를 받지 못했어요. 그 때는 무비자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 15일이었는데, 5년 남짓 동안 쉼 없이 일본을 오가야 했죠.
컬린=지난 3월 우리 밴드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을 수상할 때 기념 공연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무대에서 상을 받을 수는 있어도, 노래를 할 수는 없었죠. 제가 가진 비자가 공연비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너무 속상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말이 일관성 없어요. 지금까지는 안된다더니, 이번달에는 영어도 가르치고 공연도 할 수 있다더군요.
하세가와=공연비자인 E6 비자를 받을 때 에이즈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해요. 도대체 음악 활동하는 것과 에이즈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인권은 어디 간 건지 모르겠구요. (출입국관리국에서는 E6 비자를 가진 외국인 중에, 관광진흥법에 의한 호텔업 시설, 유흥업소 등에서 공연, 또는 연예활동에 종사하는 자를 대상으로 에이즈 검사증을 받는다고 해명했다.)
컬린=한국의 공연장 시설도 아쉬운 점이 있더라구요. 한국에서 가장 시설이 잘 되어있다는 한 공연장에서 노래한 적이 있었어요. 기대가 높았는데, 많이 실망했어요. 우리 밴드 멤버가 7~8명이기 때문에 음향 효과를 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소리가 너무 나빴어요. 공연하는 중에 서로의 악기 소리가 잘 안들렸죠.
하세가와=맞아요. 한국에는 빼어난 음악인이 참 많은데, 그 사람들이 설 수 있는 훌륭한 무대가 너무 적어요. 심지어 방송국에서도 음악인이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안되죠. 저 같은 기타리스트의 앰프 볼륨은 너무 작아서 그냥 묻혀버리죠.
컬린=외국인 음악인으로서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음악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외국인이라서 알려지는 거죠. 음악성과 상관 없이, 밴드의 마스코트 같은 이미지를 주기는 싫거든요.
린다 컬린 / 공연장 음향시설 허술해 실망
음악성보다 외모로 승부하는 풍토도 ‘한’ 담긴 판소리 듣고 동질감 느껴
하세가와=그렇죠. 저는 음악인 이외의 노릇을 요구받을 때도 가끔 있어요. 예를 들면 방송에 나와서 웃기는 말하고,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라도 하길 바라는 식이죠. 외국인이 그런 걸 하면 ‘그 친구 재밌네’라는 말을 듣겠죠. 하지만 저는 음악인이지 그 외의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컬린=한국 대중 음악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비슷비슷한 음악을 하다보니 외모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으로 승부를 걸죠. 이런 문제는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에요. 잘 생긴 친구 몇 명 묶어서 노래를 시키는 거죠.
하세가와=저는 그런 음악도 약간은 필요하다고 봐요. 마치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 중에서 때론 좋은 음악, 멜로디 라인이 뛰어난 음악도 있죠.
컬린=예,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주류 음악의 거품이 너무 크다 보니, 다른 음악들이 들어설 자리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한국의 전통 음악을 듣고 더 감동을 받는데요, 특히 판소리를 듣고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아일랜드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죠. 한국의 한이라는 정서를 표현하는 영어 단어는 없지만, 아일랜드어에는 거의 같은 의미의 브론 (bron)이나 퀴나(caoine)라는 단어가 있어요. 문화적인 동질감을 느끼는 거죠.
하세가와=저는 지금도 한국의 60년대 가요를 들으면 충격을 받습니다. 음악적인 선입견을 버린, 대단한 창조성을 가진 음악들인데요, 우리 세대들은 음악을 너무 배우면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보니 창조적인 음악이 잘 안나오고,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음악만 나오죠.
컬린=활동을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도 있으시죠?
하세가와=그렇죠. 한국에 오느라고 일본에서 모았던 음반을 모두 팔고 왔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처음 몇개월간 여관과 친구들 집을 전전했던 건, 그만큼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었죠. 일본 사람들이 약간 시니컬하고 ‘블랙’한 부분이 있는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정말 정열적이에요. 홍대 앞 클럽이 불법일 때, 열정을 가지고 클럽을 운영하고 음악을 한 친구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복한 기억이에요.
컬린=한국에서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아요. 한번은 내용도 모르고 녹음하러 갔는데, 알고 보니 한 다국적 기업의 광고 노래였어요. 더블린에서 대학 다닐 때, 노동절이면 반자본주의 시위를 그 회사의 매장 앞에서 했거든요. 고심 끝에 그 노래를 불렀죠. 제 영혼을 판 셈이죠.(웃음) 그러고는 고향에 제일 친한 친구한테 얘기했는데, 그 친구가 소문을 다 퍼뜨린 거에요.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들이 그 노래 부르면서 놀려요. ‘두번째 달’ 멤버들과 활동한 3년은 무척 행복한 기억이에요. 이번에 그들도 저와 함께 여행 삼아 아일랜드로 가요. 거기서는 그들이 반대로 낯선 외국인이 되는 거죠. 기대되요.
정리/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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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요헤이는 197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면서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 활동을 했다. 95년 우연히 ‘산울림’과 신중현의 음악을 접한 뒤, 친구와 함께 카피 밴드인 ‘곱창전골’을 만들었다. 97년 한국에서 첫 공연을 가진 이후, 활동 무대를 아예 한국으로 옮겼다. 그 뒤 10년 가까이 홍대 앞에서 활동하면서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다. 밴드 ‘뜨거운 감자’에서 기타를 맡고 있고, ‘산울림’과 ‘델리스파이스’에 세션으로 참가하고 있다. 60~70년대 잊혀진 한국 가요를 듣는 것을 즐기고, 허름한 식당에서 제육볶음이나 설렁탕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린다 컬린(28)은 아일랜드 남동부에 있는 고리라는 작은 도시 출신. 더블린에 있는 밀타운 인스티튜트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소규모 클럽에서 아마추어 포크 가수로 활동했다. 2002년 영어 교사 자격으로 한국에 왔고, 2003년 겨울 김현보 등 7명의 음악인과 함께 ‘두번째 달’을 결성했다. 이들은 올해 3월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컬린은 김광석과 하찌, 시네드 오코너를 좋아한다. 순두부찌개와 라면을 즐겨 먹는 그는 아일랜드에서도 싱어송 라이터로 음악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종종 한국에 들러 ‘두번째 달’ 친구들과 공연도 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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