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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30 21:01 수정 : 2006.07.30 21:01

헬리콥터 소리만 요란한 ‘미국 판타지’

‘마지막 남은 뮤지컬 빅4’라는 광고 문구를 앞세우며 〈미스사이공〉(1989) 라이선스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의 하나라는데,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만만찮은 관람료에 뮤지컬 팬은 물론이고 공연 예술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마지막은 괜히 마지막이 아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헬리콥터 소리 요란히 울리며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스사이공〉은 젊은 배우들의 가창력 외에는 별다른 특장도 없이 불쾌지수만 높이는 작품이었다.

‘베트남 판 나비부인’으로 알려진 〈미스사이공〉은 창작 초기부터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짙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세계 4대’라는 평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후 나온 많은 뮤지컬들이 영감을 얻었다는 웅장한 무대장치 덕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헬리콥터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대규모 무대장치가 순회 공연에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였고, 그래서 엉덩이가 무거운 뮤지컬이 되고 말았다.

이번 한국 공연은 2004년에 새로 만든 투어 버전이다. 작품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나 예전에 본 공연을 되새겨보려는 관객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성을 강조한 무대세트는 이미 다른 무대에서도 익히 보던 평범한 것이고 주된 선율 한 둘을 제외하면 노래도 낡았다. 입체영상이라는 헬리콥터는 스크린이 작아 끝이 잘리는 등 실제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병사들이 오르는 계단과 영상이 잘 맞지 않아 미군 병사들이 헬기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뛰어내리는’ 형국이 된다.

3m 크기로 공중에 매달린 호치민 흉상 부조와 한글판 휘장은 베트남보다는 왠지 북한을 연상시킨다. 미대사관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려는 베트남인들의 사투 장면이나 여주인공 킴의 정혼자인 베트콩 간부 투이의 폭력적인 캐릭터는 이 작품이 왜 반공 뮤지컬의 모방 대상이 되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스토리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부모형제를 폭격으로 잃은 17살 소녀 킴은 전쟁의 원인인 미군과 왜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가? 왜 미군 병사 크리스는 신사요 구원자고 베트콩 청년 투이는 포악한 공포의 대상인가? 미국은 베트남 2세(부이도이)들을 구제하자면서 영웅 행세를 할 수 있는가? 이건 순전히 미군(서양)이 주인공인 남성 판타지에 불과하다. 아시아라는 처녀는 순결하고 연약하며 백인 병사는 당연히 그것을 소유한다. 게다가 둘 사이에 난 아들을 위해 이 여성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희생한다.

이 놀랍도록 제국주의적인 남성 판타지에 우리가 동참할 차례란 말인가? 사이공과 방콕의 매춘 클럽에서 전시되는 반라의 여성 육체가 좋아서? 아시아의 이름으로, 여성의 이름으로, 이건 결코 오락이 될 수 없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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