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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초 입은 안데스 민속음악인들
한국활동 3년만에 경사
‘한’의 정서 유사… “친숙할걸요”
25~26일 ‘로스 안데스 거리 떠나 정식무대
흔히 잉카음악이라고도 불리는, 남미의 안데스 음악은 깊은 산속 한 모금 약수 같다. 언뜻 보면 무미무취한 약수도 깊은 ‘물맛’을 싣는 것처럼, 안데스 음악은 단순하고 꾸밈 없지만 결이 깊은 아름다움을 품는다. 맑은 물이 조미료로 찌든 혀끝에 상쾌한 청량감을 주듯이, 이들의 음악 역시 생활의 소음을 뚫고 안데스 산맥 자락 무공해의 소리를 전달한다.
“안데스 음악?”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사실은 이 음악을 직접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언제부터인가 몇몇 남미 음악인들이 ‘부유한’ 한국을 찾아 거리 공연을 벌였왔기 때문이다. 대로변에서 판초를 입고 나란히 서서 기타와 민속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지에서 온 안데스 음악인들이다.
이들 중에 한 그룹인 ‘로스 안데스’가 처음으로 거리를 떠나 본격적인 공연무대를 밟는다. 이들은 오는 25일, 26일 이틀 동안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약 15곡의 정통 안데스 음악을 들려준다.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던 남미의 민속음악이 이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된 셈이다.
“벌써부터 제대로 된 공연을 갖고 싶었지만, 지금까지는 여건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이런 자리를 마련하니 긴장도 되고 설랩니다.” 이 그룹에서 유일한 한국인 멤버인 잉카 조(46)씨는 공연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로스 안데스’는 2003년에 ‘뉴까치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그룹. 그 이후에 수백회에 이르는 거리공연을 하면서 이름도 두차례 바뀌고, 멤버도 몇차례 바뀌었다. 지금은 창립 멤버인 조씨와 함께 움베르또 꼬르도바 (41), 엔리께 베가(28), 움베르또 사란식(28), 루이스 꼬르도바(21) 등 4명의 에콰도르인이 한 가족을 이루었다.
음악적으로는 에콰도르인의 민속 음악 그룹에 한국인인 조씨가 낀 모양새지만, 그룹 결성의 계기는 조씨가 마련했다. 그는 1989년 길을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안데스 음악을 듣고 “가슴이 뻥 뚤리는 것 같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 조씨는 “안데스 음악의 고향을 찾아서” 다섯 차례에 걸쳐서 남미를 다녀왔다. <조선일보> 광고 대상을 받는 등 소위 ‘잘 나가던’ 카피라이터였던 그는 1999년에는 마침내 회사 일도 접고, 2003년에는 결국 에콰도르 민속 음악인을 아예 한국으로 ‘모시고’ 왔다.
그는 “어떤 때는 제가 전생에 잉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다름 멤버들과 디엔에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데스 음악을 듣고, 연주를 할 때 그 디엔이이가 같이 공명한다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엔 조씨와 비슷한 디엔에이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조씨가 문을 연 인터넷 까페 (cafe.daum.net/nucanchinan)에는 이미 8000여명이 가입했다.
안데스 음악은 남아메리카 북서부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전수된 음악이다. 주요한 악기로는 우리의 단소와 비슷한 ‘께나’와 동유럽의 팬 파이프와 유사한 ‘삼뽀나’ 그리고 우리 장고와 유사한 ‘봄보’ 등이 있다. 여기에 16세기 스페인 침략자들의 영향으로 들어온 만돌린과 바이올린이 첨가된다. 7음계의 선율을 따르지만, 스페인의 영향 이전 고유의 5음계 형태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조씨는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과 남미 원주민인 인디오의 애수는 정서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이 음악을 처음 듣는 분들도 이 음악에 쉽게 빠져듭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리공연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보통 빠른 음악을 연주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안데스 음악 특유의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음악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로스 안데스’는 에콰도르에서 온 정통 인디오 음악인들 ‘로스 안데스’의 멤버 움베르또 꼬르도바 (41), 엔리께 베가(28), 움베르또 사란식(28), 루이스 꼬르도바(21)는 모두 에콰도르의 오따발로라는 작은 도시 출신이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은 인구가 겨우 2만명이다. 해발 2560m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남미 원주민인 인디오들의 문화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남미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음악으로 치면 우리 진도쯤 되는 곳이다. 당연히 이 곳은 실력있는 인디오 음악인들의 요람이다. 해마다 70~80개팀이 전세계의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난다. 에콰도르 전체에서 한 해에 100~150개팀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고려하면, 이 작은 도시의 음악적인 위상을 알 수 있다. ‘로스 안데스’의 멤버들도 전세계의 거리공연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움베르또 꼬르도바는 주로 미국과 남미에서 약 15년간 활동한 경우. 우리나라에는 지난해에 처음 왔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점이 안데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한국에서는 전통 사찰로 올라가는 오솔길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움베르또 꼬르도바씨의 맏아들로, 한국이 첫 해외 방문지다. 핸드폰과 오락기 등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전세계에 나가서 공연을 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과 인터넷을 통해 채팅하는 것을 좋아한다. 베가는 꼬르도바의 조카. 고향에 부인과 두 아이를 둔 그는 말을 시켜도 눈만 빛낼 뿐 좀처럼 말을 않는 스타일이다. 한국 라면을 유달리 좋아한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칠레나 브라질 등지에서 활동했다. 사란식은 불교 음악에 관심이 많고, 한국의 대중음악도 두루 듣는 편이다. 대중가수 중에서 ‘비’를 좋아한다는 그는 “다른 곳 사람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우리를 음악인으로 존중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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