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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전’의 전시품들. 일민미술관 들머리에 들어선 반공소년 이승복, 유관순 열사의 동상(왼쪽)과 전시장 안에 차려진 쌈지 마켓의 판매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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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 70년대 동상…전시장엔 유명작품 싸구려 범벅
“날조에 날림 더한 짬뽕문화” 초유 실험불구 시대감성과 거리
최정화씨 이색기획전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관공서가 밀집한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 서울에서 가장 권위적인 공간이라는 이 거리가 요즘 ‘불온’한 공기로 술렁거린다.
8월 말부터 네거리 한쪽 일민미술관과 〈동아일보〉 새 사옥 사이 공터에는 1970년대 학교 교정을 점령했던 구닥다리 동상들이 뿌리째 뽑힌 모습으로 들어앉았다. 유관순 열사, 반공소년 이승복, 책읽는 소녀상 등이 난잡한 숫자와 스프레이에 뒤덮인 몸뚱어리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세종로와 맞은편 이순신 장군 동상의 미관을 치받는 날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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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더미 설치물 앞에 선 연출자 최정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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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살바, 가슴시각개발연구소 등을 만들며 한국 현대미술의 첨단을 후지게 노래하고 ‘주욱’ 달려갔던 그의 작업들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시대 감성에 뒤처지는 조짐을 조금씩 보여 왔다. 된장녀, 명품족, 럭셔리풍, 웰빙 트렌드가 문화코드를 지배하는 지금 오색 소쿠리, 인형, 황금빛 ‘똥 트로피’ 같은 난민적이고 ‘빠글빠글’하고 ‘번쩍번쩍’한 팝아트적 감성은 ‘호기심 천국’은 될 수 있어도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기엔 다분히 나이가 들어 보인다. 이 잡탕 미술의 백화점에서 왠지 아련한 향수나 인류학적 박물관 분위기가 풍기는 것은 전시의 상당부분이 이미 지난 시절 정서에 바탕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최씨가 급변하는 시각문화의 감수성 앞에서 이미지 장사꾼과 예술 놀이꾼의 경계를 어떻게 줄타기할지 짐작해보는 것이 전시를 곱씹는 묘미다. 평론가 강수미씨는 “미술관에서는 양순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대중들에게 여전히 카타르시스를 주는 전시”라며 “그가 즐겨 표현해온 한국의 짬뽕문화, 키치 문화가 이미 한물간 트렌드로 바뀐 사실을 얼마나 작가가 직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10월15일까지. (02)2020-2055.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일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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