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0 19:59
수정 : 2006.10.10 19:59
로댕갤러리 ‘사춘기징후’전
‘나도 팔고 싶어…사고 싶어…어디 갈 수 없는 내 욕망을 구해줘…내 나이 스물인데 나도 뭔가를 팔아야지…맨주먹 불끈…에라 돌자 한바퀴 영등포 돌자 한바퀴…마이 콤플렉스…오 머니…어머니!’
영등포시장 일대를 도는 트럭 위에서 드러머와 함께 악쓰는 청년 래퍼의 절규 어린 공연을 담은 작가 임민욱씨의 동영상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하지만 전시장 밖에서는 주차공사장의 요란한 굴착기 소리가 ‘두두두’ 들린다. 1990년대 이후 주변부 하위문화로 관심을 돌린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사춘기적 성향을 발굴·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차려진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의 야심작 ‘사춘기 징후’전(11월5일까지·02-2259-7781~2)의 풍경은 사춘기보다는 난민 코드로 풀어본 미술 난장에 가깝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만화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12명의 신진·중견 작가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이런 ‘초난감’의 놀라운 다채로움과 엽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한국 현대미술의 폭발성과 엄청난 에너지를 풀어놓는다.
민중미술에 원류를 두고 도시 건달들의 감수성을 분홍빛 화면에 표현한 최민화씨의 연작 그림이나 알약, 고물 기타 등으로 소외된 도시 청춘들의 슬픈 가슴을 표현한 배영환씨의 조형물들을 보고 나서 서도호씨의 교복 군상이 보이고 다시 임민욱씨의 거리 공연, 작가 새침한 와이피의 손과 목 잘린 엽기 일러스트(사진)로 넘어가는 전시장의 동선은 세련된 백화점 진열장의 인상을 풍긴다.
기획자가 말한 질풍노도의 저항의식, 비판의식을 내세운 작품들의 사춘기적 특징은 역사적 맥락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시대, 미술 내부의 소통 문제들도 찾기 힘들다.
작가 김홍석씨는 영화적 서사를 영상에 풀어놓는 것이 장기다. ‘문민정부가 총기 소지를 자유화해 살인이 밥 먹듯 벌어진다’는 식의 거짓말을 태연자약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인터뷰영상물 〈와일드 코리아〉가 최민화, 배영환씨의 작업과 어떤 맥락이 닿아 있는지,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내면을 교복을 매개로 꼬집어낸 서도호씨의 작품이 정말 사춘기적 저항의식으로 충만한 것인지 전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미니멀 그림이나 단색조 회화의 옹호자였던 삼성컬렉션의 전력에서 볼 때 미술 현장과 미술 제도가 수십년간 전혀 다른 맥락에서 따로 돌았던 상황을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사실 이 전시가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도 할 만하다. 이 전시는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인 소통 단절을 다른 목소리로 까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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