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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브랜드 공연’ 1호 ‘태’ 막바지 연습
“자, 이 부분 대사 바뀌었어요. 이렇게 고칩니다.” 갑자기 연출가 오태석(66)씨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진다. “아니, 아니 감정을 더 실어야지.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배우들의 눈빛이 일제히 오 감독에게 쏠린다. 잠시 고민하던 성삼문과 현덕왕후의 동선이 바뀌고, 단종의 억양은 더욱 애절해진다. 지난달 30일 오후, 막바지 한창인 연극 <태>(<태(胎)> 연습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974년 초연 이후 33년만에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선정된 부담감 때문인지, 이날따라 연출가 오씨는 날카롭게 주문을 해댔다. 오씨는 연극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정인지 사돈 현씨의 대사를 일부 삽입했다. 다시 열정적인 주문이 이어진다. “더 울부짖어. 혼을 다 쏟아부으라고. 그래야 극이 더 생생해진다고.” <태>는 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고 장준하와 백기완씨를 체포하려고 내린 소급계엄령에 연세대 의대생들도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 뒤 오 감독이 직접 극본을 쓴 작품이다. 권력을 유지하려고 대 살육을 감행했던 세조, 그리고 사육신의 한명인 박팽년 가문의 대를 이으려는 한 여인의 몸부림이 기본 뼈대를 이룬다. 초연 이후 여러차례 무대에 오르며 유명해진 작품인데, 정작 원작자인 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벌써 30년이나 된 묵은 연극이라고? 흐른 세월만큼 <태>도 바뀌었다. “세월이 얼마인데….” 오 감독은 직접 원작을 손봤다.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왕후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새로 등장해서 이 작품의 주제인 모정을 더욱 부각시킨다.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도 원작에는 없던 인물이다. 세조 역시 인간적인 모습이 더해졌고, 나약하게만 그려졌던 단종도 강해졌다. “보시오 숙부, 내 몸도 토막내 주시요. 토막 난 어미에게서 나온 육신이지. 나도 토막으로 닮게 하여주오.” 끝까지 세조에 저항하는 강한 인물로 단종을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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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인간적·단종 강하게’ 손질
10일부터 국립국장서 손님맞이 “원작에서는 세조가 사육신의 망령에 사로잡혀 갈피를 못 잡는 인물이었는데 이번에는 폭군이 아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살육을 선택해야 하는 고뇌가 더 많이 녹아있어요. 반면 신숙주는 더 냉철하고 차가워졌죠.”(장민호·신숙주 역) “원작보다 이야기를 더 쉽게 풀었고, 새로운 인물도 등장합니다. 단종이 특히 많이 달라졌는데 어린 비운의 왕이 아니라 성숙한 인물로 그려 이색적입니다. 예전보다 세조 역할 하기에는 더 쉬워졌고요.”(김재건·세조 역) 업그레이드된 2006년판 <태>의 백미는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할아버지(박중림)를 죽이게 되는 박팽년의 며느리, 그리고 주인인 박팽년 가문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이가 대신 희생 되는 박씨 집안 여종이 울부짖는 장면이다. 두 여인의 기구한 운명은 신분과 처지를 떠나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정치권력에 맞선 자궁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야. 죽은 자 앞에서 누구나 부끄럽잖아. 그래서 ‘죽은 자’들을 보강했어.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거지. 잉태한 자식을 향한 모정과 한국인의 원형적인 생명의지(모태), 생명의 존엄성을 고스란히 담은 거지.”(오태석)
<태>는 11월10일부터 1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원로배우 장민호, 백성희씨를 문영수, 이승옥, 오영수, 최상설, 서희승씨 등이 출연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7시30분, 공휴일·일요일 오후 4시. 2만~3만원. 1588-7890, 1544-1555.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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