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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류연복 화백 전시회. 전시기간은 9월 17일부터 대추리 문제 해결될 때까지 ⓒ 전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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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관람불가'가 아니라 '일반인 관람불가'? 그렇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좋아졌다지만 요즘도 80년대처럼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불순한' 전시회가 있다. 현재 대추리에서 열리고 있는 류연복 화백의 전시회가 바로 '일반인 관람불가' 전시회다. 마을주민 보다 몇배 많은 경찰과 전경들이 마을입구에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봉쇄를 풀기는 하지만, 언제 봉쇄되고 언제 풀리는지 모르는 일반인들이 발길을 하기란 불가능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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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역사관 전경 ⓒ 전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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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역사관은 주인이 떠난 빈집을, 남은 주민들이 '대추리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역사관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역사관은 마무리 철거작업이 이뤄지면 굴삭기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될 수도 있지만, 류연복 화백은 그 기간 동안에라도 외로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며 33점의 판화를 역사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대추리 주민들은 이 작품들로 <류연복 판화 전시회>를 꾸몄다. 대추리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마을을 드나들었고, 마을에 수호 장승까지 세워주면서 맺어온 각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물론 외지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민중판화'를 대추리 안으로 들여보내고 또 전시까지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작품들은 우여곡절 끝에 마을 안으로 들어갔고 9월 17일부터 전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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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느티나무, 정월> 다색목판 35 x 25 cm 1993년 초판. 2000년 재판 ⓒ 류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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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화백 전시작은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제작한 '민중판화'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지난 세월 만든 작품들을 살펴보니 그때 만든 작품들이 현재의 대추리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10년, 1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농촌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화가의 설명을 듣고 위의 작품을 보면, 주민들이 하나 둘씩 떠나 이제 불과 수십가구 밖에 남지 않은 대추리와 도두리에 쓸쓸하게 서있는 느티나무라 해도 무리가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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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농촌 청년> 다색목판 50 x 35cm 1993년 ⓒ 류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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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은 시골에서 농사짓느라 53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농촌 청년'을 표현한 작품이다. 농촌에 산다고 신부를 만나지 못한 늙은 총각이지만 그래도 농사지을 땅이있어서일까, 웃음을 잃지 않는 '건강한 민중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제 대추리에 더 이상 이런 '건강한' 웃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웃음대신 간절한 기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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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기도> 흑백목판 20 x 60cm 1986년 ⓒ 류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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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마을 입구에 있는 수백명의 경찰병력을 철수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식과 손주들이 편안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올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들도 편안하게 장도 가고 대처에도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대신 감옥에 간 김지태 이장님이 석방되게 하여주소서.
우리 대신 보호감찰형과 사회봉사형을 선고받은 마을주민 홍문의씨도 무죄되게 하여주소서... 그러나 대추리와 도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미군기지 이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분단이고, 이 분단이 해결되지 않는한 제2, 제3의 대추리, 도두리 문제는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그래서 류화백은 분단의 철조망이 끊어지고 그 사이로 우리 민족의 풍요를 기원하는 보름달과 정토세상을 뜻하는 연꽃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남북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 몇년동안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분단문제와 민족의 장래를 논의한 적이 있는가? 아니다. 그냥 몇년을 흘려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자리를 마주하고 민족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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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진흙의 해방> 다색목판 90 x 35cm 1989년 ⓒ 류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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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고향에서 쫓겨나고 농토를 잃는 농민이 없는 세상이 오게하기 위하여 하루빨리 우리 민족끼리 대화를 해야한다. 그게 바로 남북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그런 모습이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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