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11월 15-1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사진은 지휘자 로린 마젤.
|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백발 노인이 천천히 무대에 들어섰다. 걸음걸이는 노쇠해 보였지만 뒷모습은 당당하고 기품이 있었다. 그가 지휘대에 서서 만들어내는 음악은 마치 자신이 걸어온 지난 세월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는 듯 했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패기와 자신감 넘쳤던 지금까지의 음악 생활, 그리고 노년에 이른 자신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젊은 시절의 찬란함과 그때의 격정을, 장년시절의 치열함과 어려움을 그리고 현재의 만족과 초연함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는 다양한 연령층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공감을 얻으며 부드럽게 그러나 힘이 있게 계속됐으며 정확하면서도 유연하게 전개되었다. 지난 15~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뤄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공연 전체가 로린 마젤의 삶을 조명하는 공연이었다. 공연 내내 그가 가진 음악적 해석은 21세기의 오케스트라에서는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대적 장악력을 통해 철저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특히 첫날 공연에서 20세의 조이스 양이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알린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에서는 어린 연주자를 배려하고 리드하며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걸 보며 그가 가진 자신감이 독선과 교만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느끼게 했다. 베토벤의 <에로이카>에서는 앞서 갔던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투영해내는 듯했는데 그가 지휘한 영웅은 힘이 있으나 부드럽고, 정확하지만 경직되지 않았는데 그의 지휘봉 아래 음 하나 하나의 색깔과 세기까지도 통제되고 있었다. 연주 내내 엄청난 강약 대비가 극적 효과를 만들어냈고, 2악장 ‘장송행진곡’(Funeral March에서는 치열한 삶을 살아낸 자의 마지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감동적으로 조명해 냈다. 뉴욕 필의 공연은 올해 내한했던 외국의 여러 오케스트라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장중함과 유려함에 있어서는 런던 심포니에 비길만 했지만 그들보다는 훨씬 친화되고 정제된 음악을 들려주었고, 정확함과 음악적 색채의 화려함에 있어서는 엔에이치케이교향악단에 견줄만 하지만 그들보다는 한층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들의 절제력을 보여주었다. 음질의 충실함과 원숙함에서는 빈 필과 견줄만 했지만 그들의 레퍼토리가 가볍고 빈약했던데 반해 뉴욕 필은 성대하고 다양하게 준비한 만찬에 맛있는 후식까지 제공해 대접받는 사람에게 대단한 만족감을 갖게 했다. 그동안 늘 제기되어져 왔던 공연 관람료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적절한 가격이 제시되었다. 공연이 끝나자 해맑게 웃는 그를 향해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기립해 노 거장의 장거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음악회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이었다.왕치선/클래식 평론가 queenwng1@hanmail.net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