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03 17:39
수정 : 2006.12.0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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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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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
설화나 전설에서 튀어나와 예술 속에서 불멸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서양에서 오르페우스나 프로메테우스, 파우스트, 돈주앙 등을 꼽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바리공주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캐릭터들은 인류의 원초적인 욕망이나 유한한 인간이 처한 딜레마적인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줌으로 해서 문학 작품이나 공연 예술에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다. 이중에서도 돈 주앙은 남성의 성애를 대변하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정지할 줄 모르는 영혼, 여성을 정복하고 성애의 순간적 쾌락에 몸을 맡기면서 한편으로는 서늘한 냉소를 보여주는 인물. 그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유일할 것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연출자 질 마으가 새로운 뮤지컬 <돈 주앙>(11.30-12.16,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을 가지고 왔다. 몬트리올 초연(2004)과 파리 공연(2005) 이후 처음이다. 주로 프랑스와 퀘벡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만든 뮤지컬이니 주최 측 입장에선 첫 외국 공연이라 할 수도 있다.
<돈 주앙>은 등장인물과 댄서의 분리,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가기 등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을 유지했지만 새로운 매력은 없었다. 공연의 장점으로 꼽히는 화려한 플라멩코 춤의 경우 금속성의 발소리를 강조하는 춤으로 안무했는데 뮤지컬 넘버에 동반되는 이 소리가 귀를 피곤하게 한다. 가수 출신 배우들이 역할을 맡았기에 노래는 손색이 없지만 스페인 풍의 어슷비슷한 음악들은 그 자체가 너무 단조롭다. 뮤지컬 넘버라기보다는 대중가요나 민속음악에 가까운 이 노래들은 그 쉬운 비트에 이끌려 따라 부르고는 싶을지언정 매혹되어 감상할 정도의 독창성은 없다.
객석 규모에 비해 협소하게 느껴지는 무대는 세련미도 부족하다. 평면적인 객석 구조로 인해 1층에선 둥근 무대 바닥을 이용한 표현들도 볼 수 없다. 돈 주앙의 퇴폐적 쾌락을 상징하는 듯싶은 황금과일 더미들이 매달린 술집 표현이나 결투(죽임)로 시작하여 결투(죽음)로 끝나는 구조 같은 것들에서 잠시 상상력을 발동시켜 볼 수는 있다.
극중에서 악마적 냉소주의와 자유주의의 화신으로 묘사되던 돈 주앙은 마리아라는 여성과 절대적 사랑에 빠져 질투에 신음하는 평범한 애인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돈 주앙의 매력은 사라져버린다. 신화적 인물 돈 주앙의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치명적인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이라는 관념까지 포함하여 모든 상식적 가치로부터 빠져나오는 끝없는 자유본능으로부터가 아닌가? 돈 주앙이 유혹적인 것은 그가 우리를 감염시켜 그 해방감을 함께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돈 주앙>은 삼손의 머리칼을 자르듯 돈 주앙의 힘을 거세시킨다.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위해서라면 돈 주앙이 왜 필요했을까.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돈 주앙을 희생시킨 것이 아닌가.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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