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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9 17:29 수정 : 2006.12.19 17:29

여운 작 <대추리 옆 미군부대>.

여운 민미협 회장 개인전


작가는 한지 위에 시커먼 목탄으로 기억 속의 풍경을 그린다. 그 풍경 속에 정겹고도 쓸쓸한 회한 어린 이 땅의 흙길과 꺼끌꺼끌한 산, 숲의 이미지들이 들어앉았다. 집요하게 쓸고 그리고 사포로 닦아내어 잡풀처럼 곳곳에 보푸라기가 일어난 화폭의 질감은 곧 작가가 남몰래 다독거린 그만의 인간적 질감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판의 마당발로 꼽히는 민족미술인협회의 여운 회장(한양여대 교수)이 작심하고 18년만에 근작들을 전시장에 내놓았다.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검은 소묘’는 문화계 통틀어 사람들 좋아하기로 소문난 그답지않게 처연하고 울울한 인생 내면이 풀려나온 고백록 같다. 목탄, 콘테와 파스텔을 부려 한지에 마치 수묵화처럼 그린 이땅 곳곳의 평범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흑백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겸재 정선이 보았던 시점을 따라 그렸다는 ‘선유도에서 본 북한산’, 미군기지 반대 투쟁이 벌어졌던 대추리 농토길의 낮과 밤을 그린 작업 등에서 보이듯 그림 속 풍경은 화가라는 자의식 속에서 기억을 화두로 붙잡고 그린 것들이다.

“항상 사람 만나느라 바쁘면서도 나는 천상 작가라는 생각이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손이 안풀리고 가슴이 안풀리는 것을 어떡하누. 굳어버린 머릿 속 관념이 풀려 가슴에서 손으로 가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지요. 지금도 손으로는 느낌이 절반 정도밖에는 안 간 듯 합니다.”

작가는 현실과 기억을 반영하는 진부하지 않은 풍경을 가장 염두에 삼으며 작업에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이미 70년대 전위적 신문 콜라주 작업으로 화단에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80년대말 그림마당 민에서 선보였던 민화와 수채 풍경화들로 전통의 현실적 변주를 꾀한 바 있고, 그 맥락에서 수묵화적 풍경을 천착하려 애써왔다고 한다. 미술단체장, 교수의 번다한 일상 속에서 몸이 그림에 붙지않는 현실 앞에 울울이 맺힌 답답증을 그는 수년째 공언해왔던 개인전을 치르면서 간신히 풀어낸 격이다.

여백과 시커먼 먹빛 톤이 교차하는 화면들은 그 고투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요하강과 마곡동에 봄비내리는 풍경, 고찰 고달사터로 가는길 등은 모두 그가 길을 실제 걸으며 경험했던 감정과 정서를 담은 것들이다. 고난받는 민중들과 함께 나무 아래 선 지식인 이영희 선생과 눈달린 달을 배경으로 그린 남도 화단의 거두 오지호 초상 등에서 현실과 역사, 혹은 추상과 구상정신을 함께 거두어내는 작가의 그림 열정이 엿보인다. 2층에 전시된 닭그림 채색판화에서 몸을 떨어내며 깃털을 흩뿌리는 닭의 날갯짓(<사랑가>)이야말로 지금 그의 처지일 것이다. 전시는 30일까지. (02)725-1020.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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