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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8 16:51 수정 : 2007.01.28 16:51

창무국제예술제

리뷰 = 창무국제예술제

이 세상은 아름다움이 널리 확산되는 반면, 예술은 점점 소멸되어간다. 이러한 비관은 우리가 ‘미의 이상기후’ 시대에 살고 있음을 뜻한다. ‘예쁘게 꾸미기’의 열정은 성형수술부터 신도시 건설까지 모든 일상을 관통하고 있다. 날씨처럼 에워싼 아름다움의 공격은 정작 진짜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지가 흐려지는 거울 사회를 빚어내고 있다. 장식과 관습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점점 혼돈에 빠져드는 것이다.

올해 창무국제예술제에 참가한 일본의 창작무용인 ‘부토’ 그룹 산카이 주쿠의 <카게미-거울의 은유를 넘어서>는 하얀 연꽃을 공중에 띄우면서 무대를 진흙바닥으로 바꾼다. 그 위에 혼돈의 놀이를 펼쳐가는데, 우리 시대의 미추가 가진 아이러니와 그 결을 같이 한다. 느리디 느린 주검의 춤은 현실과 탈현실 사이에 있고, 공포와 유머가 뒤섞인다. 하얗게 칠한 얼굴과 몸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단지 일본식 코드를 서구적으로 조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주검의 춤은 여전히 참혹하고 아름다웠다. ‘크레타인의 거짓말’처럼 변하는 역설적인 미의 세계, 그것은 거울이 깨질 때 나는 비명처럼 가냘펐지만 혼돈의 일렁임을 되비추고 있었다. 다만 그 역설조차 지나치게 서구적 미학으로 만들어지며 부토의 레퀴엠을 울려퍼지게 했다는 점은 우울했다.

반면, 인도네시아 사르도노 댄스씨어터의 <쓰나미 속의 여인>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2004년 아체를 강타한 쓰나미의 충격이 어떻게 여성들의 얼굴을 지우고 몸의 존재를 부인하게 했는지 간단하게 천을 쓰는 것으로 접근한다. 여기에 마치 ‘통아저씨’풍의 춤을 추는 마초형 남성을 등장시켜 자연재해와 남성중심주의를 등식으로 연결한다. 생태학과 페미니즘 측면에서 좋은 착안이지만 20분 남짓한 소품이라 안무의 씨앗을 모두 싹 틔우지는 못했다.

제14회 창무국제예술제는 ‘창무회 30주년 기념’이란 표제만이 눈에 띄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아시아의 대표성을 띤 단체들에다 국내의 중견과 신예들을 붙여 주목할 만하다. 북경현대무용단 무대에서는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중국 춤의 현황을 엿볼 수 있고, 유럽 무대에 진출하며 국제적 역량을 과시한 창무회의 다음 행보도 지켜볼 수 있다. 또한 임현미가 기계적 분절을 집어넣어 한국 춤의 새로운 도주선을 선보이는 장면, 류경아가 세잔의 기하학을 통해 고백을 증폭하는 장면 역시 반짝이는 신진기예의 발견이다.

이 축제는 아시아의 ‘허브’ 개념이 유행하기 십수년 전부터 아래로부터 아시아의 공연예술 연대를 실천해온 역사가 깊다. 혼돈에 빠진 아름다움과 길항하며 심층의 아름다움, 은폐된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애써왔다. 이제 좀더 참신한 기획과 튼실한 지원으로 이 예술제가 과거보다 미래로 열리기를 바란다.

김남수/무용평론가 anacroid@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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