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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부터 금관조복을 입은 흥선대원군(1820~1898)의 50세 초상과 그의 장남인 흥친왕 이재면(1845~1912)의 초상, 차남인 고종(재위 1864~ 1907)의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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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전
대원군·고종·‘얼짱’ 이우 등왕족 5명 초상 처음 한자리 동서고금 역사에서 몰락한 왕실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비극으로 끝난다. 한일병합으로 500년 왕조사를 접어야 했던 고종과 순종, 그들의 형제들, 후견인 흥선대원군 또한 운현궁을 주무대로 비극을 연출했다. 19세기 중엽 쇄국과 개혁을 병행했던 대원군은 임오군란 뒤 중국에 끌려갔다가 귀국 뒤 다시 일본의 꼭둑각시 정객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 고종은 퇴위당하고, 순종이 즉위한지 3년만에 나라는 망했다. 고종의 큰 형 이재면은 부친 대원군과 고종의 권력 다툼 사이에서 바람잘날 없이 살았다. 그의 아들 이준용도 구한말 동학농민군과 내통한 대원군이 반일 쿠데타를 꾀할 때 군왕 후보로 옹립됐다가 역적으로 몰려 10년 이상 일본을 떠돌았다. 요즘 인터넷에서 생전 모습이 인기를 끈 이준용의 아들 이우는 일본 육사를 나와 중일전쟁 때 일본군 장교로 싸웠다. 광복을 일주일 앞둔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숨졌다. 장례는 8월15일 일왕의 항복방송 직후 치러졌다.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4월15일까지)은 이 처연한 역사를 숨겨놓은 이들 왕족 5명의 갖가지 초상화를 처음 모았다. 그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운현궁 기와담과 전통문을 재현한 전시장에 대원군의 초상영정 6점을 필두로 고종의 초상 어진 3점과 첫 공개된 이재면, 이준용, 이우의 초상들이 잇따라 내걸렸다. 미술사 마당에서 생전 애증이 엇갈렸던 그들이 초상으로 재회한 셈이다. 단연 우뚝한 그림은 운현궁 터줏대감 대원군 초상이다. 당대 최고 화원이던 이명기와 유숙, 이창희가 정성껏 그린 6점은 각기 입은 옷은 달라도 매섭고 번득번득한 눈, 단호하게 붙은 위아래 입술, 꼿꼿한 자세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인물의 내면기운을 두루 뽑아야 초상화의 제격이라는 ‘전신사조’의 진면목이다. 끝말린 와룡관과 학창의를 입고 안경, 탁상시계, 벼루, 골동품 등이 놓인 탁자 앞에 괄괄한 표정으로 앉은 50세때 초상은 문무에 두루 밝은 권력자임을 과시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다. 맥풀린 듯한 대원군의 중국 체류시절 맞은편 전시벽의 얼굴사진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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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면의 아들인 영선군 이준용(1870~1917)의 초상이며, 오른쪽 도판은 이준용의 양아들 흥영군 이우(1912~1945)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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