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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8 19:43 수정 : 2007.03.18 19:43

70~80년대 만화키드들이 판 벌인 ‘이정문 만화 48년 전시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압도됐습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몇달 동안 저희 집을 들락거리며 화실 책상부터 옛날 습작, 30년 전 쓰던 라이터까지 들고 가더니 정말 거창하게 꾸몄더군요. 혼자서 개인전을 열기는 참 어려운 일인데….”

만화가 이정문(66)씨 본인이 가장 놀랐다. 그가 최고 인기 만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전성기에도 ‘만화가의 전시회’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분신처럼 만들어낸 만화 캐릭터들이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만화가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벌써 보름 넘게 지났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이 화백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지난 2월22일부터 경기도 이천 청강문화산업대 청강만화박물관에서는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5월22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로봇 ‘캉타우’, 심술쟁이 ‘심술통’ 같은 독창적인 캐릭터로 70~80년대를 대표했던 만화가 이정문 화백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기획전이다. 당시에는 최고 인기작가였지만 어느새 만화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그를 다시 알리는 이 전시를 기획한 사람은 만화평론가로 유명한 박인하(37) 청강대 만화창작과 교수다.

박 교수가 이 화백을 소개하고자 나선 것은 그 자신이 “이 화백의 만화 〈철인 캉타우〉를 보면서 한글을 배운 ‘이정문 키드’”이기 때문이다. 꼭 아들뻘인 독자 소년이 자라나 아버지뻘인 옛 만화가를 오늘에 되살리는 셈이다. 그러나 그가 전시회를 연 것은 어디까지나 만화학자로서다. “만화가 일회용 심심풀이나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매체로 잘못 낙인찍혔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만화는 이제 서사 장르의 중요한 뿌리로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따라서 만화의 역사도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박 교수는 이정문 화백의 캐릭터들이 국내는 물론 외국 만화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기 어려운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당시 날씬한 몸매의 일본 거대로봇들과 달리 캉타우는 뾰족한 뿔들이 달린 독특한 모습에 에너지 문제로 제약을 받는 작동방식으로 사실감을 더한 독특한 로봇이었다. 다짜고짜 심술을 부리는 것 같지만 뻔뻔함과 불의를 응징하는 줏대있는 캐릭터 심술가족도 이 화백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박 교수는 이 화백을 한국 만화사의 주역으로 재발견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고 있는 만화가 이정문(오른쪽) 화백과 박인하(왼쪽) 교수. 이화백의 만화를 보고 자란 박교수는 “이제 한국만화의 고전들에 대한 관심과 평가에 들어가야 한다”고 전시를 기획한 취지를 설명했다.
“문학과 영화의 고전이 중요하듯 만화도 문화로 자리잡으려면 고전을 다시 봐야 합니다. 언제나 필요할 때 볼 수 있어야 하고, 옛 만화의 보관도 철저해야 합니다.”

이정문 화백은 각고의 노력으로 전문가로 우뚝 선 이다. 한국전쟁 뒤 열두살에 생업에 뛰어들어 구두닦이, 신문배달, 뽑기장사 등을 하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문구점 점원으로 취직한 뒤 새벽 두시까지 만화를 그려 실력을 쌓았다. 열여덟살에 〈심술첨지〉로 공모전에 당선되며 등단해 인기 만화가가 됐다. 데뷔 48년째인 지금도 만화를 그리고 있다. 전시회장은 이 화백이 데뷔하기 전 실력을 갈고닦던 시절의 습작부터 최근 만든 이화백 캐릭터 피겨까지 모든 자료를 모았다. 그가 한창 만화를 쏟아내던 시절의 화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세대를 뛰어넘은 평가와 주목은 이 화백에게 그대로 창작 욕구로 이어진 듯했다. 이 화백은 “데뷔 50주년에 맞춰 2041년의 미래상을 그린 만화를 기획하고 있다”며 영원한 현역으로서의 의지를 보였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청강만화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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