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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09 18:31 수정 : 2007.04.09 18:37

사진_뮤지컬 해븐 제공

끔찍한 진실이 낭자하는 핏빛 동화
뮤지컬해븐 필로우맨


어린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이야기.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엽기적이고 잔혹한 방법으로. 그는 조용히 그 이야기들을 읽어 나간다.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저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데, 그 이야기들엔 차마 귀를 틀어막을 수 없는 묘한 슬픔이 흐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이야기를 쓰도록 작가를 몰아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또 다시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가.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이 여기, 필로우맨의 무대를 슬프도록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들인다.

잔인한 이야기가 그려내는 잔인한 이야기

유명치도 않은 한 작가가 쓴 이야기들과 흡사하게 자행된 어린이 살해사건. 경찰서 취조실에 끌려온 카투리안은 도무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그게 무슨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곧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형사들은 옆방에 붙잡혀 온 지능이 낮은 그의 형 마이클이 자백을 했다면서 카투리안을 윽박지르는데, 흡사 게임이라도 즐기고 있는 듯 한 분위기다. 죽을 만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형을 만나 그의 진실을 전해들은 카투리안은 사랑하는 형을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하고, 베일에 감춰져 있던 두 형제의 슬픈 어린 시절이 밝혀진다. 그러나 다소 허탈한 결과에 아쉬운 마음을 추스르기가 무섭게 드러나는 반전. 카투리안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보존해 주는 조건으로 자백을 하지만, 과연 사건은 그저 이대로 매듭지어질 것인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를 찾은 배우 최민식은 필로우맨을 불편한 작품이라고 얘기한다. 기존의 극이 가지고 있던 관습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추구하는 이 작품에는, 작가의 끝 간 데 없는 상상력이 세상을 향해 날리는 공격적인 메타포가 가득하다. 카투리안을 연기하게 될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언제나 작품을 선택할 때는 평범하지 않은 역할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는데, 다중적이고 미묘한 그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두근거리는 기대와 설레는 두려움으로 작품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빼앗긴 마음을 다시 카투리안의 머리 속에, 가슴 속에 투영해 본다. 이 작품은 그렇게, 배우 최민식의 마음과 오랜 시간 그의 무대를 기다려 온 관객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강력한 주파수를 내보낸다.


“좋은 작품과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연출가 박근형

“작품을 처음 읽고 슬펐어요. 잔인한 얘긴데, 전혀 흉측하지 않고 서정적으로 느껴졌죠. 특히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들이나 형과의 관계는 몹시 안쓰러워요. 아마도 마틴 맥도너가 작가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은 못하지만 인간 안에 있는 잔인한 본성이랄까, 욱 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 보인 것 같아요.

번역극이 그런 점에서 참 어려워요. 우리랑 다른 이들의 정서니까 어떤 부분은 심정적으론 알겠는데, 근데 이 얘길 지금 왜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과연 우리나라 관객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남 얘기 같지는 않을까 하는 것들이 걱정되는 거죠. 더구나 이 작품 같은 경우 극적인 사건이 별로 없어요. 결국 다 작품 이야기거든요. 언어연극이랄까요, 지루하면 안 될텐데 라는 생각을 하죠. 또 하나는 무대인데, 사건이 없으니까 시각적인 그런 게 별로 없거든요. 이 큰 극장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그렇다고 없는 무대를 마구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배우들이 어떻게 그들의 열기와 에너지로 극장을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겠죠. 다행히 모두들 너무 열심이세요.”

언젠가 우연히 작가 마틴 맥도너를 마주친 적이 있다는 연출가 박근형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하는 그를 건강하고 멋진 작가라고 평했다. 끝까지 자신의 작품을 지키려는 카투리안을 보며, 이 인물을 만들어낸 마틴 맥도너라는 사람은 참으로 자의식이 강한, 자기를 사랑하는 훌륭한 작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제가 이 상황이었다면, 저는 작품이고 뭐고, 살려주세요, 그랬겠죠. 에이, 그걸 보관해서 뭐해요. 제가 안 그랬는데요, 라고 변명해야지.” 그 겸손한 몇 마디를 들으며 문득 주옥같은 그의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소탈하고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그려내던 그가 새롭게 선보일 핏빛 동화 필로우맨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기대해 본다.

글_김슬기 기자(soolsoolgi@naver.com)

일시: 2007년 5월1일~5월20일 평일8시, 주말3시7시, 월쉼
장소: LG아트센터
작: 마틴 맥도너

연출: 박근형
출연: 최민식, 최정우, 이대연, 윤제문 외 극단 골목길 배우
문의: 02)2005-01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04 한국연극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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