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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1 18:44 수정 : 2007.04.11 19:33

글렌 굴드

"장준혁 과장은 나의 사기를 이해할 것"

구부정한 자세, 신과 대화라도 하는 듯한 흥얼거림, 바짝 당긴 의자, 손목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만의 타건.

한 남자가 스튜디오에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A단조 푸가’를 연주한다. 바깥에선 미세한 농도의 음까지 마그네틱 테이프에 담아내려는 프로듀서의 손가락이 마치 피아노 치듯 콘솔 위에서 춤춘다. 이번이 8번째 녹음. 녹음이 끝난 뒤 남자는 “장엄하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레가토로, 다소 과장되게” 연주한 테이크 6과 “지배적인 스타카토 방식”으로 모양을 잡은 테이크 8의 녹음에 꽂혔다.

몇 주 뒤, 남자는 두 녹음 모두 너무 “단조롭다(monotonous)”는 결함을 깨닫는다. 어떻게 할까. 개개의 장점을 버리긴 아깝다. 두 녹음의 템포는 거의 같았다. 남자는 결정한다. 테이크 6은 푸가의 오프닝과 결말부로, 중간부는 테이크 8로 ‘짜깁기’하기로. 위대한 음악의 내적 통일성, 거장의 품위, 예술의 진정성은 중요하지 않다. 기술에 윤리를 종속시키는 것. 기술을 통한 연주의 완전성에 대한 탐닉. 그는 글렌 굴드다.

이 ‘위대한 사기’는 굴드가 1966년 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아티클 ‘레코딩의 전망(The Prospects of Recording)’에 그 전말이 실려있다.(http://www.collectionscanada.ca/glenngould/028010-502.1-e.html)

“1950년 12월 24일, 18살에 굴드는 첫 라디오 독주회를 갖는다. 바로 이때부터 마이크와 자기테이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시작됐다.”(미셸 슈나이더)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첫 음반계약을 맺은 굴드는 55년 뉴욕 CBS 방송 스튜디오에서 역사적인 음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다.


. “콜롬비아사에서 첫 녹음을 하기 위해 자신의 녹음장비를 가지고 도착한 이 젊은 피아니스트를 보고 녹음실의 엔지니어들과 기술자들은,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은 6월의 아주 따뜻한 날이었는데, 굴드는 외투에다 모자, 목도리, 장갑 차림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장비로는 그가 늘 들고 다니는 악보 가방은 물론 타월 한 무더기와 큰 생수병 2개, 알약병 5개, 그리고 아주 개성적으로 특수 제작된 그의 의자가 있었다. 사실 여러장의 타월이 필요했는데, 이는 글렌이 피아노에 앉기 전 20분 동안 더운 물 속에 팔꿈치까지 손과 팔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수도 필요했는데, 글렌이 뉴욕의 수돗물을 마시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알약은 두통, 긴장 완화, 혈액순환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했다. 실내온도 조절을 맡은 기술자는 녹음 제어장치를 운전하는 기사만큼이나 애를 먹어야 했다. 글렌이 아주 미미한 기온 변화에도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넓은 스튜디오 안의 온도 조절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콜롬비아 레코드사 소식지, 미셸 슈나이더 인용)

굴드는 64년 4월 10일 LA연주를 끝으로 10년여의 짧은 공식연주를 접는다. 그는 82년 죽을 때까지 오로지 스튜디오 안에서의 레코딩 작업에만 매달린다.(이건 음악에만 해당되는 사안이다. 그는 작가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대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는 평생 80장이 넘는 음반을 녹음한다

컴퓨터로 복제된 굴드는 굴드인가 아닌가

2006년 9월 25일, 살아있었다면 74살이 됐을 굴드의 생일. 미국의 젠프 스튜디오는 저승에서도 감기 걸릴까 걱정하고 있을 굴드를 되살리려는 리마스터링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굴드의 건반 두드림, 음량, 페달링 등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해, 이를 피아노로 되살린다는, 굴드 복원 프로젝트. 굴드를 세상에 알린 55년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모노에서 슈퍼 오디오 콤팩트 디스크로 되살아 난단다.

[관련기사]

<한겨레> 컴퓨터로 되살린 굴드연주도 굴드연주?
<한겨레> 글렌 굴드의 유령

아우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연하다. 흡사 종말을 앞둔 두려움에 가깝다. 복제된 굴드. ‘굴드리안’들의 안타까움은 굴드 특유의 ‘흥얼거림’은 재현되지 않으니 굴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굴드의 연주일까, 아닐까. 이게 굴드인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지금 아는 굴드는 과연 굴드였을까. ‘위대한 사기’로 만들어진 굴드에서 우리가 찾는 아우라는 과연 뭘까. 아우라의 개념에 충실하자면, 애초에 실황이 아닌 복제된 음반에서 아우라를 주장하는 것은 물신화된 뮤즈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음 하나하나의 질감과 파동을 바이트로 분절하고 이를 접합해 복제된 굴드와 “오늘날 대부분의 레코딩은 20분의 1초까지 다양한 음의 길이를 가진 테이프 조각들의 집합”이라는 굴드의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굴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부분인 아리아를 원래의 순서를 뒤집어 30개의 변주 다음에 녹음하기도 했다. 어떤 소절들은 21번이나 연주한 다음 마지막 연주를 골라냈다. 연주회장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 예술의 전당의 21세기 청중들은 눈앞에서 산산조각 깨지는 바흐의 내적 긴장과 통일성, 건질 길 없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깊은 의미를 망연히 쳐다봐야만 했을 것이다.

물경! 사상최초 - 글렌 굴드 심령과의 인터뷰
그래서 굴드를 만나보기로 했다.
너는 너의 복제를 원하느냐.
우리는 ‘그림자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 것이냐.
술을 쎄게 마시고 무아의 상태에서 심령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자.

굴드는 예의 그 전매복장인, 외투에 모자, 목도리에 장갑까지 끼고 나타났다. 봄이 다 됐는데. 하긴 죽을 때도 찌는 듯한 더위에 방안에서 그러고 있었으니. 감염에 대한 두려움에 접촉을 꺼리는 중세의 은둔자는 역시나 나와의 악수를 거부했다.

김=우리 처음 만났다. 근데 난 술을 넘 쎄게 마셔 힘들다. 그러니 살살 인터뷰하자. 살아있을 땐 절대로 신문을 읽지 않았는데, 이젠 신문 좀 보지? <한겨레> 1부만 봐라.

굴=너, 참 예의 없다. 상품권은 주나? 무가지는 몇 개월 줄거냐?

김=됐다. 그냥 좆선이나 봐라. 썬데이중앙 보든가. 어쨌든, 너 그 옷차림은 뭐냐. 내가 알기론 너 죽고 너네 나라인 캐나다 국립도서관 음악부에서 구멍 뚫린 장갑, 목도리, 모자, 외투 싹 쓸어간 걸로 아는데.

굴=짝퉁이다.

김=흠… 오늘 물어볼 주제에 근접한 답변이지만 그 얘긴 쫌 있다 하자. 일단 팬서비스도 좀 하고. 동물원에 가서는 왜 곰과 코끼리에게 말러의 곡을 노래해 줬냐. 미친 거 아니냐.

굴=난 동물 좋아한다. 기자보다 곰이 더 낫지. 바흐, 베토벤, 쇼팽, 하이든이라고 이름 지어준 금붕어, 개, 토끼, 거북이도 있다. 게다가 내가 번 돈들은 동물보호단체와 구세군에 기부했다는거 모르냐.

김=제대로 미쳤구나. 돈 많아 좋겠다. 주식 좀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 코스피가 1500이 넘었다. 투자 좀 하지. 상장 안된 <한겨레> 주식 싸다. 한 백만주만 사지?

굴=내가 쫌 주식 안다. 살아있을 때는 내가 주주로 있던 금광의 상태를 알아보려고 북극까지 다녀오기도 했지. 근데, 그것도 살았을 때 얘기지 죽으니 다 헛빵이더라. <한겨레> 주식 너나 사라.

김=이스라엘 항공만 탔던 까닭은 뭐냐? 스튜어디스 언니들이 예뻤냐?

굴=거기 항공사는 비행기가 몇 대 없다. 그러니 정비를 꼼꼼하게 했을 거다. 믿고 탈 수 있는 거지. 어차피 나중에는 비행기도 안탔다.

김=목욕할 때도 장갑을 끼는 변태스러움은 또 뭔가.

굴=빤쓰 입고 목욕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좋게 생각하자.

김=미안하다. 근데 하나 더 묻자. 너 연주자세가 그게 뭐냐? 코는 왜 건반에다 처박나. 웃찾사에 나오는 코봉이냐? 코로 연주하게.

굴=멋져 보이지 않냐.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바흐는 리스트나 뭐, 이런 애들과는 달리 화려한 스케일이 필요 없다. 피아노로 침잠하듯, 그렇게…

김=그런 인간이 자꾸 흥얼거리나? 난 처음에 너 연주 듣고 귀신들린 음반인 줄 알았다. 뭐, 듣다 보면 익숙해지긴 하지만.

굴=57년이던가. 거기 이스트가 30번지 콜롬비아 스튜디오였는데. 바흐의 파르티타 5번을 녹음했다. 녹음 책임자인 하워드 스콧이 난리가 났다. 그렇게 목청껏 노래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연주할 때 입에 방독면을 쓰고 있으면 노래가 들리지 않을걸.”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노래를 하지 않으면 연주가 더 나빠지거든. 내 불쌍한 스타인웨이 CD318만 있었어도 그렇게 심하게 노래 안 할 텐데. 나의 불완전함을 카바해 주는 건 걔밖에 없었는데.

김=아, 그 제작번호 174번 피아노. 57년인가 연주회에서 돌아오다 트럭에서 떨어져 박살 났었지. 걔 캐나다 정부에서 수리했을 텐데.

굴=그걸 어따 써. 걔는 스타인웨이 174가 아니다. 짝퉁일 뿐이지. 걔는 죽었다.

김=젠장. 그래 말 잘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 큰일 났다. 사람들이 너 연주를 복제해서 짝퉁 굴드를 만든다고 한다.

굴=얘기 들었다. 내가 살아있을 때는 레코딩 기술이 그리 빡쎄지 못했다. 어떤 기계인지 한번 보고 싶은데. 난 얼리어답터다.

김=너 사기꾼 아니냐. 폼 좀 잡는다는 연주자는 그런 짓 안 한다. 실력도 있는 애가 왜 녹음할 때 자꾸 이것저것 섞냐?

굴=너 내가 쓴 논문 안 읽었냐? 인터뷰 자세가 안됐다. 내가 66년에 예언하지 않았더냐.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콘서트라는 건 향후 1세기 안에 사라진다. 그 역할은 전적으로 일렉트로닉 미디어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제대로 폼 잡고 묵시론적 예언을 했건만.

김=니가 북두신권이냐. “넌 10초 뒤에 뒤질 것이여.” 그게 녹음 짜깁기와 무슨 상관이냐.

굴=나보고 위조범이라고 따지는 거냐. 난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면 텔레비전 연속극에 등장하는 연기자 같았다. 카메라에 불만 들어오면 모든 대사를 까먹는 임현식 같은 사람. 난 하나같이 정당한 연주방법 네댓개를 머리에 둔다. 연주를 하거나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거다. 아름다움을 접합하고 절단하고, 합성하고 분해하고, 한마디로 외과적인 미의 개념이다. 동시녹음, 반복녹음. 보들레르라면 ‘화장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을 거다. 난 임상실험, 해부를 원했다. 장준혁 과장이라면 이해할거다.

김=연주회는 어떤가. 연주회가 사라진다고? 예언은 틀리라고 있는 거다.

굴=음악은 청중을, 연주자를 명상으로 인도해야 한다. 하지만 2999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명상에 잠길 수는 없다. 찜질방에서 넌 참선할 수 있냐. 더 쎄게 말해 볼까. 도덕적으로 비열한 짓, 속임수, 솔리스트에게 주어지는 권력과 지배, 대중에 대한 비굴한 의존이다. 2999명 타인들의 땀냄새가 각자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무슨 음악인가.

김=영화 300 봤나? 백만명에 둘러싸여도 의연한 마초들도 있다. 300 얘기는 다음 번에 길게 쓸 일이 있으니 여기선 접자.

굴=인터뷰하는 자세가 영 안 좋다. 영화 얘기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영화음악에 내 연주가 쓰인 거 좀 있다. 양들의 침묵에서는 81년 녹음 골드베르크 아리아가 나온다.

굴드가 사용하던 피아노 의자.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특수제작됐다.

김=당신, 62년인가 연주회에서 ‘일체의 감정 표시 및 박수의 폐지를 위한 굴드안’을 작성한 적도 있었다.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표값이 얼마나 하는 줄 알고 그러나.

굴=그냥 해 본거다. 거, 앨범에 ‘라이브’라고 씌워 있는 거. 실황녹음. 가장 직접적인 거라고 사람들이 믿는 그 앨범이, 사실은 스튜디오 안에서 이뤄지는 거다. 하지만 내가 연주회를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정신적 차원에 있다. 내가 거부한 의사소통은, 커뮤니케이션 시대라는 명목으로 팔아먹는 텅 빈 말들이다.

김=말이 점점 어려워진다. 다시 짝퉁 굴드로 돌아가자. 음악에 있어 기술적인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애들이 라이브 안되지만 음반에선 펄펄 날 듯이. 당신도 마찬가지다. 음반녹음을 위해 여러 차례 녹음에서 발췌된 부분을 짜맞추는 창조적 위조행위.

굴=일단 최강창민처럼 나도 흥얼굴드로 불러달라. 윤리? 난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내가 녹음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주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는 나에게 있어, ‘버블세븐’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다.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말한다. 마치 꿈속의 시간처럼 재배합되고, 거슬러 올라가고, 응축되는 시간. 제자리에서 시간을 돌려세울 수 있는 가능성. 꿈의 아파트. 게다가 난 연주회때도 최고다. 동방신기나 슈주 같은 애들하고 비교하지 말라. 살짝 빈정 상할 뻔 했다.

김=미안하다. 하지만 더 순결한 19에 출연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슬슬 인터뷰를 마쳐볼까 한다. 술이 깨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컴퓨터로 복제된 짝퉁 굴드는 굴드인가?

굴=애초에 나는 없었다. 헉, 이런. 말하고 보니 너무 멋진 말이다. 이 말 꼭 인터뷰에 써 달라.

김=아, 술 깬다. 홀연히 사라지시오, 글렌 굴드.

굴=흥얼흥얼흥얼~ 휘리릭.

(이것은 꿈이런가, 환각이런가. 술에서 깨니 남는 건 숙취요, 드는 건 술값 생각뿐.)

굴드는 애초부터 없었다

벤야민이 지적했듯이,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했다. 문제는 예술작품의 기계적 복제다.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아우라는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굴드의 아우라는 어디에 있는가.

굴드는 기계복제의 미래를 훨씬 앞서 갔다. 과감히 선취했다. 19세기에 성립된 ‘집중적 청취’와 근대적 청중의 탄생(와타나베 히로시)은 완전체로서의 작품이라는 이념을 만들어 낸다. 예술가의 지고한 정신이 끊임없는 조탁을 거쳐 오른 경지. 거기에 몰입하는 청중. 우리는 작품 자체의 아우라가 아니라 ‘예술의 전당’이라는 ‘이념의 아우라’를 신봉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굴드는 말했다.

“물론 나는 키트(조립용품)라는 생각에 전면적으로 찬성한다. 나는 서로 다른 연주 시리즈를 발매하여 청취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녹음을 선택하게 하고 싶다. 그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를 만들게 하는 거다. 그들에게 구성 부분을 전부, 그러니까 서로 다른 템포의 단편들을 모두 제공하는 거다. 다른 역동적인 변화를 사용해 그들이 진정으로 즐거워할 때까지 편집을 맡기는 거다. 나는 이런 일을 정말 하고 싶다.”(글렌 굴드-존 맥크루어 대담, “청중의 탄생”에서 재인용)

그렇다고 굴드에게서 진품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 진품성은 복제가능성을 배제한다고 벤야민은 밝혔는데, 벤야민의 아우라를 따라가기로 한다면, 굴드는 복제되지 않을 것이다.

뭐, 걱정인가. 4월 19일 짝퉁 굴드가 발매되면 한번 들어주고 말자. 이미 우리들이 생각하는 아우라의 위기는 19세기말 20세기초 자동피아노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1897년에 나온 에올리언사의 신제품 피아놀라는 악보를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의 강약이나 페달링 같은 세세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예술적인 연주를 실현할 수 있다고 자부하기에 이르렀다.”(청중의 탄생)

굴드 음반에서 유일하게 간직된 아우라는 그의 사진이다. 이율배반적이게도 무한 복제된 그의 사진만이 일회적 시공간의 결을 온전히 담고 있다. 허공 어딘가에 떠 있는 눈, 신 앞에 엎드린듯한 자세, 무언가 기도하는 듯한 입모양. 사진이 가지는 의식적 가치의 최후 보루가 인간의 얼굴이었다는 벤야민의 지적은 그래서 옳다.

왜 걱정하는가. 짝퉁 굴드가 허물어뜨릴 아우라는 없다. 그저 다른 굴드가 나왔을 뿐.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방에서는 1530개의 카세트 테이프와 360개의 발표되지 않은 녹음, 150개의 비디오 테이프, 240개의 디스크가 나왔다.

굴드가 자신의 집에 걸어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밤샘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유폐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진 그의 영혼이 보인다.

[참고자료]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동문선 펴냄(2002)
‘청중의 탄생’ 와타나베 히로시 지음. 윤대석 옮김. 강 펴냄(2006)
The Prospects of Recording, Glenn Gould, High Fidelity Magazine, vol 16(1966)
글렌 굴드 공식홈페이지 http://www.glenngould.com
캐나다 국립도서관 글렌 굴드 아카이브 http://www.collectionscanada.ca/glenngould
위키피디아 글렌 굴드 http://en.wikipedia.org/wiki/Glenn_Gould
**가상 인터뷰의 재구성은 전적으로 ‘굴렌 굴드, 피아노 솔로’에 실린 내용에 의존했음을 밝혀둡니다. 별도의 표시 없이 문장을 통째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역자와 저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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