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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싸조 2집 앨범 표지. 그림 말고는 아무 글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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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굳게 먹고 CD를 오디오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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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받침대를 뜯어내야 곡명 리스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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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버튼 오디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당신. 서정적인 기타선율이 흐른다. 뜻밖이다. 곡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 그럼 노랫말은? 미성의 보컬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다른 악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노랫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조차 힘들다. 중간중간에 옛날 영화 대사 같은 것들도 툭툭 튀어나온다. 이 앨범,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묘하게 끌린다.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사운드, 귀에 꽂힌다. 노랫말이 잘 안들리는 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음악 위로 곡명처럼 엽기적인 노랫말이 얹혀져 들려온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4. 불싸조 밴드가 결성된 건 2005년이다. 애초 밴드 이름은 없었다. 이름이 없다는 뜻인 ‘언타이틀’이라 붙이려 했는데, 9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댄스듀오가 이미 선점한 이름이었다. 공연을 하러 봉고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붙인 이름이 ‘불싸조’다. 불사조와는 아무 상관없는, 아무 뜻도 없는 이름이란다. 지금도 밴드 이름은 없는 상태라고 리더 한상철(기타,보컬)은 귀띔한다. 그해 1집 앨범을 냈지만, 홍보 따윈 전혀 관심 없었다. 공연 때도 1집 곡들은 무대에 전혀 올리지 않았다. 앨범에 실린 곡은 듣기도 민망하고 연주하기도 민망하다는 이유에서다. 무대에선 새로 만든 곡들만 연주했다. 2006년 10월, 그동안 만들어온 곡들을 담은 2집 앨범을 냈다. ‘너희가 재앙을…’이다. 앨범 제목을 안붙이려다 그냥 생각나는 성경 문구를 달았다. 역시 아무 이유 없단다. 앨범 표지에 아무 이름도 안박은 점, 곡명 목록을 숨겨놓은 점, 가사집마저 안넣은 점 등등 따져물으니 돌아온 건 이 한마디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좋아서요.” 2집을 낸 직후 새 진용을 갖췄다. 서명훈(베이스), 고영일(드럼)과 함께 무대 위에 오른다. 이번에도 공연 땐 2집 곡들을 연주하지 않는다. 이젠 노랫말도 잊어버렸다. 노랫말을 적어놓은 종이도 버렸단다. 2집 곡들의 노랫말은 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존재가 돼버렸다. “요즘은 노래를 아예 안불러요. 노래하는 게 귀찮아졌거든요.” 공연 때는 노래 없이 연주만 한다. 3집 앨범을 낸다면 이런 연주곡들로만 채울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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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싸조가 공연하는 모습. 이들은 이전 앨범의 곡들은 절대 연주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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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대화를 이어가도 도무지 밴드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밴드의 이름처럼 이들의 참모습 자체도 없는 게 아닐까? 어떤 음악평론가는 음악에 대한 이들의 태도가 진지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 천연기념물처럼 돼버린 주류 음악시장의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는 밴드이기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들이 내놓은 앨범 속에 담긴 음악, 이들이 공연장에서 온몸을 던져 쏟아내는 음악, 그 자체가 진지함을 넘어서는 뭔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들은 “아무 이유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진짜 음악인들은 음악으로 말하는 법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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