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꽃작품 꽃누르미 전시회
|
풀꽃작품 꽃누르미 전시회
보라빛 연봉 너머 노을이 지고 옥수가 부서지는 계곡. 좌우에 초여름 녹향을 뿜어내는 나무들. 고사리, 도라지, 꽃다지가 바위 틈에 피어있다. 분명 채색 풍경화인데 다가서면 그게 아니다. 수채도 오일도 아니고 눌러말린 꽃, 풀, 이파리, 나무껍질 조합이다. 압화 또는 꽃누르미라고 들어보셨어요? 서영희씨(꽃누르미협회 이사)는 신기해하는 관객들한테 설명하기에 바빴다. 화폭에서 눌러말린 꽃은 그대로 꽃이 되고, 나무껍질은 나무기둥이, 뿌리는 작은 가지로 변해 있다. 고사리와 측백나무는 수풀이 되고 꽃배추는 산이나 숲으로 변신해 있다. ‘꽃누르미전’ 세번째 전시회가 경인미술관(02-733-4448)에서 31일까지 열린다. “사나흘이면 시드는 꽃을 더 오래 두고 볼 수는 없을까. 70년대 말 꽃꽂이 하던 분들이 시작했다고 해요. 물론 문창호지의 국화, 편지 말미의 네잎 클로버 같은 단순작업은 예부터 있어 왔구요.” 꽃누르미협회 김현숙 회장의 말이다. 봄 여름에는 흰냉이, 비노리, 넉줄고사리, 꽃다지 등 풋것을, 가을 겨울에는 낙엽, 뿌리, 나무껍질을 채취해 말린다. 굳이 산에 들지 않아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들이 훌륭한 재료가 된다. 부엌의 버섯, 오이, 가지, 심지어 포도, 키위, 수박까지 얇게 저며 말리면 풍성한 과일 바구니 그림 꺼리다. 돌돌 깎아낸 사과껍질의 나선을 살리고 둥근 아네모네, 점점 안개꽃과 합치면 아라베스크 문양이 된다. 칡넝쿨, 호박손, 갈퀴나물은 가는 선 효과에 제 격이다. 채취한 재료는 건조매트 갈피에 펴넣고 5㎏ 정도 무게로 눌러둔다. 이삼일 뒤면 원색 그대로 바싹 마른다. 물 많은 야채나 과일은 저미거나 반 갈라 아침저녁으로 건조매트를 갈아준다. 바나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는 게 김 회장의 귀띔이다. 마르면서 어둡게 변하는 붉은 꽃은 약품으로 환원처리를 한다. 이렇게 마련한 재료를 미리 구상해둔 한지 위의 자리에 배열하고 눌러 고정하면 그림 완성! 진공방습 뒤처리는 필수다.6~7년 경험이 쌓이면 원근법을 구사할 수 있다. 원경재료 위에 반투명지를 깔고 그 위에 근경재료를 배열하는 식이다. 더 발전하면 낙엽의 색만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림을 전공했다는 백진석씨는 모시, 은행, 바나나 잎 등 20여종의 잎으로 옛 부엌의 정취를 그려냈다. 어린 잎, 잎의 뒷면 등을 활용하면 명암처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꽃누르미협회(0502-711-4506)는 전국에 2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회원은 주로 주부들. 여가시간을 활용해 작품활동을 할 수 있고 아이와 함께 하면 자연스럽게 풀꽃 공부도 된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k.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