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30 20:51
수정 : 2007.08.3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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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음반작업 ‘마에스트로 프로젝트’ 나선 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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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서 클래식까지 전문가들 손잡고
장르별 2곡씩 디지털싱글 1년간 선보여
“트로트 부를 땐 트로트가수처럼 할 겁니다”
음반 이벤트 왜 하냐고요? 재밌으니까!
“나이를 꼭 말해야 하나요? 나이를 밝히면 자꾸 저를 틀 안에 가두는 것 같아서…. 트로트나 댄스 같은 이런저런 젊은 음악을 하면서 행복을 찾으면 안 될까요?”
김장훈에겐 나이가 없다. 마흔살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한번도 직접 “내 나이가 몇이오!”라고 밝힌 적이 없다. 워낙 오랫동안 나이를 안 밝혔기에 이젠 오히려 나이가 불명인 게 그답게 느껴질 정도다. 팬들은 그의 나이가 아니라 무대에 열광한다. 여전히 그의 콘서트는 만원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비(B)급’이라며 거기에 만족한다. “비급 가수가 편해요. 노래뿐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로 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가 10여년째 인기를 누리는 것은 다채로운 음악적 색깔, 그리고 그런 색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며 팬들의 눈길을 잡아온 그가 이번에도 색다르고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일명 ‘마에스트로 프로젝트’다. 1년 동안 트로트, 힙합, 록, 재즈, 뮤지컬, 클래식 등 각 음악 갈래(장르)별 ‘마에스트로’(대가)들과 작업해 두세달 간격으로 갈래별 노래 두 곡씩을 디지털 싱글로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다음달 17일 트로트곡을 시작으로 11월 힙합, 내년 2월 록, 5월 재즈, 8월 뮤지컬, 11월 클래식 곡을 발표한다. 노래가 12곡 모이면 기존 히트곡 13곡과 묶어 2장짜리 음반으로 내년 정식으로 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연중 기획이다.
“장르별로 한 곡은 그 분야의 대가, 다른 한 곡은 의외의 인물이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트로트는 〈어머나〉 〈로꾸거〉의 윤명선과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곡을 썼습니다. 재밌잖아요. 트로트로 활동하면 반짝이 재킷에 나비넥타이를 두르고 쇼무대에 설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돼요.”
힙합, 록, 재즈 노래를 발표할 때는 각각 힙합그룹, 인디밴드, 재즈 뮤지션과 함께 각종 클럽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뮤지컬과 클래식 곡을 부를 때는 무대 자체를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처럼 꾸민다. 김장훈다운 발상이다. 그는 “(콘서트 중 어깨 부상 때) 전신마취를 한 뒤 암기력은 줄었지만, 그래도 창의력과 응용력은 타고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전처럼 음반이 몇십만장씩 팔리면 이런 변칙은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가요 시장이 불황이니까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되네요. 음반 판매 수치에 크게 개의치 않게 되니까요.”
그의 이런 도전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을 법하다. 그에겐 “노래는 안 하고, 개그만 한다”거나 “노래 실력보다는 이벤트로 승부한다” 같은 비판이 졸졸 따라다녔다. “2003년 수억원 빚을 져서 달랑 3천달러 갖고 미국에 가 9개월 동안 있었어요. 그때부터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죠. 근데 이 병을 앓고 나서 한층 너그러워지고, 음악들도 더 좋아졌어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어서인지 지금은 남들이 저 욕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아요.”
김장훈이라고 하면 ‘선행을 많이 하는 가수’로 꼽힌다. 월셋방에 살면서 9년 동안 30억원을 기부했다. 결혼도 해야 하고, 노후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어요. 워낙 럭셔리한 것 좋아해 저를 위해서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수입의 80~90% 가량을 기부하는데,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가 팬들 덕이잖아요. 당연히 되돌려줘야죠. 무엇보다 기부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강해 자꾸 중독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도 광고 출연료 1억원을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모임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에 선뜻 기부했다. 아예 홍보대사까지 맡았다. 지금까지 많은 곳을 도왔지만 홍보대사는 안 맡았기에 그로서는 이례적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얘기를 듣고 열을 받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반크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갔는데, 여기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나중에 한국을 이끌 훌륭한 인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머잖아 ‘반크’ 회원들을 위한 콘서트도 열 겁니다.”
인터뷰 전문을 〈인터넷한겨레〉(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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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씨 인터뷰는 27일 오후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태어나서부터 주욱 이곳에서 살았다는 그는 “내가 살던 집은 로바다야끼 집으로 변했다”며 “작업실이 이 근처에 있어 하루에도 여러 번씩 오게 되다보니 특별한 감회가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1시간30분 남짓 진행됐지만, 중간중간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중단됐다. 카페 건물에 위치한 미술학원에 다니는 두 여고생, 카페 근처를 지나던 세 딸아이를 둔 부부, 식품유통업에 종사한다는 여성이 “함께 사진 찍고 싶다”며 카페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김장훈씨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사진을 함께 찍었다. 식품유통업에 종사한다는 여성이 건네준 케익을 직접 잘라 세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다음은 인터뷰 전문
- ‘마에스트로 프로젝트’ 구상 계기는.
= 열정을 일으키기 위한 열정이 필요했다. 가수 외길을 얼어오니까, 타성에 젖게 되더라. ‘열정’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진짜 ‘열정’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 한 번 사는 세상인데, 어려울수록 자기 일을 미친 듯이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은가.(웃음) 엠시, 드라마, 디제이로도 활동해 엔터테이너라고 하는데, 음악 밖에 한 일이 없다. 가요시장이 어려워 움츠러들게 되는데, “격하게 해보자! 미쳐보자! 열정 불살라보자!”고 했다. 이 음악도 하고 싶고, 저 음악도 하고 싶었던 게 일생의 꿈이기도 했다.
-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 아이디어를 내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세상에서 할 공연들의 아이디어는 다 짜놓았다. 밥만 먹고 그 생각만 하니까. (콘서트 중 어깨부상으로 ) 전신마취 이후 암기력은 줄었는데, 창의력과 응용력은 타고난 거 같다.(웃음)
- ‘마에스트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나.
= 1년 동안 트롯, 힙합, 록, 재즈, 뮤지컬, 클래식 등 여러 분야의 대가와 작업해 2~3개월마다 각 장르별로 두 곡을 디지털 싱글로 내는 거다. 9월17일 트롯을 시작으로 11월 힙합, 내년 2월 록, 5월 재즈, 8월 뮤지컬, 11월 클래식 곡을 발표한다. 12곡의 노래를 모두 발표한 뒤에는 13곡의 히트곡과 엮어 2장의 시디로 내년 중에 정식 앨범으로 낸다. 장르별 한 곡은 그 분야의 대가가, 다른 한 곡은 그 장르와 상관 없는 의외의 사람이 만든다. 변칙적으로 꺾는 거 좋아한다. 맨날 하는 것만 하면 재미없지 않나. 트로트는 <어머나>와 <로꾸거>를 만든 트로트의 대가 윤명선과 트로트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만든다.
- 에픽하이 타블로가 트로트곡을 만든다고?
= 에픽하이의 <플라이> 들어봐라. 멜로디가 참 좋다. 음악은 멜로디 좋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타블로는 록을 맡겨도 잘하는 친구다. 처음에 타블로도 어려워했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곡이 나왔다. 윤명선씨 노래는 <난 남자다>처럼 20대 후반부터 4·50대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다. 남자 둘이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 먹고, 넔두리를 풀어놓는 내용이다. “태양이 머리 위에 있고, 술잔 속에 달이 있잖아.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하지 않냐” 그런 거.
- 트로트 장르에 도전하는 게 신선하다.
= 장르라는 틀 자체를 싫어한다. 나이도 속인 게 아니라 안하는 거다. 나이라는 틀에 가두면 젊은 음악을 못한다. 트로트를 좋아한다. 97년부터 트로트 메들리 공연을 했다. 록하는 사람이 트로트한다고 욕하는 분들도 많다. 왜 자꾸 틀을 만들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없애나 모르겠다. 남들이 욕하는 거 신경 안 쓴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누가 나를 욕하는 것은 남들이 나를 높게 생각해서인데, 난 비(B)급 가수다. 그게 편하다. “얘는 노래는 안하고 코메디언만 한다”고도 하는데, 지금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최근에도 약을 먹는다. 그런 얘기 난 대놓고 한다.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우리나라에 공황장애만 200만명쯤 되고, 우울증 환자는 1000만명 될 거다. 정신병이라고 하면 터부시하는데, 사실 뇌감기 아닌가. 감기 걸리면 약 먹듯이 고치면서 치료해가면 된다. 그 병을 앓고 난 뒤 한결 너그러워졌다. 그래서 감사하다. 음악들도 더 좋아졌다.
- 음반시장도 불황인데, 무모한 시도 아닌가.
= 기대하는 것 없다. 궁상맞은 거 싫어하는데, “갈수록 음반시장 어렵다”고 얘기하는 것도 싫다. 어렵긴 하지만, 가수들의 형편이 일반 사람들보다 좋으니까. “나름대로 돈 벌어서, 좋은 음반 만들자. 그게 음악하는 사람 길이다”라고 생각한다. 음반이 예전처럼 50~60만장 팔렸으면, 잘 팔릴 음악만 했을거다. 많이 안 팔리니까 지금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다. 앨범이 몇 장 팔렸다는 숫자에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지금 오히려 편하다. 두려움보다 설레임이 더 크다.
- 신곡이 나올 때마다 활동 하는 거냐?
= 물론. 각 싱글마다 활동 계획도 다르다. 록 발표할 때는 클럽 위주로 인디밴드 공연을 하고, 재즈 할 때는 재즈클럽에서 공연할 거다. 힙합 할 때는 힙합하는 애들이랑 무대에 서고, 뮤지컬 할 때는 뮤지컬 브랜드를 만들어 활동한다. 트로트 할 때는 트로트 관련 쇼에서 꽃남방에 반짝이 재킷, 나이넥타이를 두르고 나올 거다. 재밌을 것 같다.
- 아참, 다친 어깨 상태는 지금 어떤가.
- 현재 장애 판정을 받았고, 무거운 것 잘 못든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어깨 다친 것도 감사하다. 무선마이크를 들면 무거워서 두손으로 잡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노래부를 때 더 처절해진다. 분명 내 노래는 어깨 장애가 된 다음에 좋은 쪽으로 변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는데, 마치 무사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 무사라니!!
= 가수와 무사의 길은 비슷하지 않나. 무사는 항상 진검승부를 하는데, 가수도 무대에서 진검승부를 한다. 내일 때문에 (목소리가 걸레가 되어도) 오늘을 아끼지 않는다. 무사는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니까 곁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않는데, 나 같은 경우 사랑을 해서 행복해지면 절망 끝에서 나오는 힘이 약해질까 걱정하게 된다. 무사는 군주를 위해 몸을 바치고, 가수는 관객을 위해 몸을 바친다. 나는 어디에서건 무릎을 꿇지 않는데, 관객 앞에서는 한다. 관객이 머리 박으라고 하면 박는다.
- 김장훈에게 팬과 관객의 의미는.
= 내가 음악을 관두게 된다면, 관객이 그만하라는 표시를 했을 때다. 어떤 부귀영화가 있다 하더라도, 관객이 원하지 않으면 가수 생활 포기 안한다. 지금도 무대에 올라가면 한없이 부끄럽다. 내 인생의 베스트 풍경은 사람들 표정이 똑같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인데, 공연 때 그렇다. 그 모습을 보면 확~ 소름이 끼치면서도, 이대로 죽어도 상관이 없다. 눈물이 난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무대에서 공연할 때마다 매번 운다.
- 선행을 많이 하는 이유도 관객 때문인가.
= 관객에게 받는 사랑을 생각하면, 사실 기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 나를 밀어주는 힘은 신앙과 관객이다. 잡놈으로 살았을 나를 잡아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 기부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돈이 아까우면 못하는 건데, 지금은 중독 수준이다.
- 그런데, 의외로 자선공연은 없다.
=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최상의 쇼를 보기 위해서다. 거기서 돈을 떼어 다른 사람 준다고 하는 건 반칙이다. 차라리 6시간 자선바자회에서 물건을 팔겠다.
- 콘서트에서 노래보다 이벤트에 더 많이 신경 쓴다는 비난도 있는데.
=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 하는 거다. 우리나라는 멘트 많이 안하고, 노래 많이 부르면 좋은 공연이라고 한다. 사실 나도 노래만 하면 더 편하다. 그런데 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하는 공연을 봐도, 노래만 하면 지루하더라. 가수가 되면 공연 중간중간에 재밌는 세상 느끼게 해줘야지 마음 먹었다. 노래만 즐기고 싶다면 ‘노쇼(김장훈 콘서트 콘셉 가운데 하나)’ 때 오면 된다. <나와 같다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할 때는 이벤트 안한다. 할 필요가 없다. 최고의 연출이 당대 히트곡이니까. 지루한 곡이 나올 때 이벤트 한다. 사람들이 바보냐. 이벤트가 신기하면 서커스 가면 된다.
이벤트를 재미로 알지만, 사실 휴머니즘이다. 이 나이에 어깨 부서지고, 사고를 내면서도 계속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 보는 게 좋아서다. 겨울 공연 때는 500만원 들여서 수세식 화장실 렌탈에서 공연장 밖에 놓아두기도 했고, 공연이 끝났을 때는 옥상에 1500만원짜리 제설기를 두고 눈을 날려준 적이 있다. 우는 관객도 있더라. 1500만원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스탠딩 공연 때는 음료수를 주기도 했다. 물론 노래를 게을리한 적은 없다. 12월 공연을 하면, 6월부터 밴드 연습한다. 그래도 지나치지 않는다. 좋은 게 잘 드러나기보다 나쁜 게 더 잘 드러난다. 워낙 이벤트라는 게 강력하니까. 쉽게 얘기해서 음악은 밥, 이벤트는 반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찬과 국 얘기만 한다.
- 독신남인가.
= 18살부터 결혼을 하고 싶었다. 태어날 대부터 아버지 없이 엄마 품에서 자라다보니, 스킨십을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어색하다. 하고 싶어도 어색해서 잘 못한다. 독신남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되면 하고, 아니면 말고다. 나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을 끼워맞추고 싶지 않다. 마음 맞는 여자 만나면 할 거다. 나이 때문에 2세를 갖지 못하면 입양하면 된다. 내가 왕족도 아니고, 가문을 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주변 사람 중에 배우자가 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 박경림씨는 결혼했다.
= (일단 웃음) 경림이보다 더 착해야 한다. 예전에는 거의 외모 위주로 봤는데, 지금은 착한 사람이 좋다. 저 사람이면 결혼해도 되겠다 하는 사람도 있다.
- 결혼을 하려면, 돈을 모아야 하지 않나.
= 일단 (상대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많이 번다. 그 돈 모두 사람(팬과 관객)들이 준 거다. 그들이 벌게 해주니까. 번 돈의 80~90% 정도 기부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돈이 채워진다. 모두 사람들 덕분이다. 우리 집이 돈만 많으면 100% 좋은 일에 쓰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검소하고 소탈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럭셔리하다. 굶고 추운 거 젊었을 때 경험으로 만족한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산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물질적인 이유로 엄마랑 누나들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어머니는 풍족하지 않지만, 밥을 굶지 않도록 해드렸다. 그것조차 안했다면 난 나쁜놈이다.
- 본인의 노후준비도 해야 하지 않나. 월셋방에 살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불안하지 않나?
= 우리 집이 어렸을 때 굉장한 부자였다. 그러다 어머니 사업이 실패해 차압만 3번 들어오고, 시골에서 월세 8만원에 산 적도 있다. 96년 내가 떠서 돈을 왕창 벌었는데, 빚이 몇 억까지 늘었다. 2003년 3천달러 들고 미국에 가 미국놈 집 마루에 얹혀 살았다. 9개월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 돈에 대해 초월했다. 어머니도 “예술하는 사람이 돈가지고 치사하면 안된다”고 하신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2년 안에 집 마련할 수 있고, 차도 살 수 있다. 그래도 안하는 건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면허도 없고, 개인적으로 운전할 일도 거의 없는데 차 있으면 뭐하겠나. 집은 렌탈이 좋다. 식구들 먹고 싶은 것 하나 못 사주고, 돈을 모아 집 한 채 사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인터뷰를 한동안 기피했는데.
= 사실 지난해 9집 <잇츠 미>를 냈는데, 선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잠수탔다. 덕분에 음반 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접었다. <한겨레>와 인터뷰 하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 반크 얘기를 꼭 하고 싶다. (최근에 김장훈씨는 광고 출연료 1억원을 반크에 기부하고, 홍보대사로 나섰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고 열이 받아 이들 나라를 꼬집어 ‘살수대첩’, ‘고이즈미를 추모하며’ 같은 공연을 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반크 기사 보고, 애국자고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직접 찾아갔다. 그러고 나서 좋게 느꼈던 게 하는 일도 대단하지만 주로 청소년들이 활동한다는 점이었다. 반크의 활동으로 미국 시아이에이 지도에서 만주가 중국 땅에서 고구려 땅으로 바뀌었다. 독도(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안 바뀌었지만. 나라를 좋게 만들었다는 존재감을 느끼면 그 아이들이 잘 못살 리가 없다. 나라에 애국하는 것도 그렇고, 청소년들에게 진짜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어 돕고 싶었다.
내년에 베이징올림픽 통해 동북공정이 전세계로 들어갈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힘이 딸린다. 외교적으로도 못 풀거다. 몇십만명의 민간 외교관이 바꿔야 한다. 반크 평생 회원비가 3만원인데, (기자도) 가입해라. 부담도 없는데…. 반크 회원들을 위한 콘서트도 할 거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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